현대인의 문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일상적 악의(惡意)의 신경학적 기원과 성장기 결핍을 차단하는 국가적 핀포인트 인프라의 철학
안승원 · Wonbrand · 2026년 10월 3일

요약: 일상적 악의는 악한 유전자가 아니라 성장기의 결핍에서 자라고, 성격은 사춘기 이후 굳는다. 한국·일본·미국의 지원 사각지대를 비교하고 0~18세에 대한 국가의 핀포인트 개입을 제안한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철학이 물어온 궁극의 질문은 언제나 ‘인간은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가’였다. 인간은 홀로 고립되어 행복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며, 좋은 삶(Eudaimonia)이란 타인과 안전하게 연결되어 서로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 평화로운 연대 속에서만 피어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대 사회의 풍경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교실과 일터마다 끊임없이 크고 작은 악의가 번식하고, 사람들은 불신과 무례함 속에서 일상의 평온을 갉아먹히고 있다.
인류는 오랜 세월 이 불행의 뿌리를 두고 ‘인간 본성이 악한가, 선한가’라는 맹자와 순자의 낡은 철학적 이분법에 매달려 왔다. 하지만 현대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이 밝혀낸 진실은 훨씬 더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선’이나 ‘악’이라는 도덕적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다. 우리가 타고나는 것은 충동성, 결핍에 대한 반응성, 공감 능력의 고저 같은 신경생물학적 기질일 뿐이다. 현대 행동유전학은 냉담함, 공감 결여, 충동성 같은 ‘어둠의 성격(Dark Triad)’ 기질의 유전율이 40~50%에 달한다는 점을 실증하지만[1], 이는 결코 인간이 악하게 태어난다는 결정론을 뜻하지 않는다.
생물학계에는 "유전자는 총을 장전할 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환경이다"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낸 것이 바로 압샬롬 카스피(Avshalom Caspi) 연구팀의 기념비적인 종단 연구다[2]. 충동성과 폭력성에 관여해 흔히 '전사 유전자'라 불리는 MAOA 유전자 결함을 타고났더라도, 유년기에 학대나 방임 없이 따뜻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반사회적 폭력이나 악행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유전적 취약성을 타고났을지라도 건강한 양육 환경이라는 방패가 있으면 그 악성은 뇌 속에서 발현되지 못한 채 잠들어 버린다. 반대로 악한 행동이 싹을 틔우는 것은 오직 '유전적 취약성' 위에 '유년기의 만성적 방임과 결핍'이라는 방아쇠가 당겨졌을 때뿐이었다. 즉, 현대인을 끝없는 반목과 불행으로 몰아넣는 일상적 잔혹함의 진원지는 유전자가 아니라, 바로 ‘마음의 가난’이다.
뉴스에나 나올 법한 흉악범이나 거대한 사기꾼은 사실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기 어렵다. 우리 삶의 평온을 깨뜨리고 매일의 행복을 짓밟는 진짜 고통은 훨씬 더 흔하고 은밀한 곳에 있다. 바로 ‘일상적인 남 괴롭히기’다.
교실 한구석에서 벌어지는 은근한 따돌림, 만만해 보이는 동료를 타깃 삼아 깎아내리는 뒷담화, 부하나 후배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며 모욕을 주는 행태, 교묘한 가스라이팅과 텃세, 눈앞의 손해를 피하려 뻔뻔하게 늘어놓는 거짓말과 안하무인의 막말들.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남을 괴롭히고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일까?
학교나 일터에서 타인을 표적 삼아 집요하게 괴롭히는 자들을 한 걸음 물러서서 응시하면, 분노를 넘어 하나의 명확하고 쓸쓸한 철학적 통찰에 도달하게 된다. ‘아, 저 사람은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본질은, 이 ‘가난’이 결코 단순한 통장 잔고의 문제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현실에서는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번듯한 학벌과 직함을 거머쥐었음에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천박하게 약자를 괴롭히고 갑질을 일삼는 이들을 무수히 목격한다. 겉은 화려한 부로 치장했을지언정, 유년 시절 부모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인격적 존중을 받아본 적 없이 지독한 정서적 방임, 가혹한 조건부 인정, 혹은 차가운 통제 속에서 자라난 영혼들이다.
통장의 돈이 영혼의 굶주림을 메워줄 수는 없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마음의 밭에 따뜻한 돌봄과 안정적인 애착을 공급받지 못한 채 자란 뇌는 세상을 '언제 나를 해칠지 모르는 정글'로 각인한다. 이들에게 타인을 배려하고 염치를 지키는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치다. 배려란 타인의 고통을 내 뇌 속에 시뮬레이션해야 하는 고도의 정신적 에너지를 요구하는데, 내면이 만성적인 정서적 기근에 시달리는 이들에게는 남의 상처를 헤아릴 한 줌의 여유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타인을 짓밟고 조롱하는 잔인함은 결코 강함의 증거가 아니다. 속이 텅 빈 자아가 부서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타인을 깎아내려 "적어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우월하다"는 가짜 효능감을 채우려는 처절한 자존감 구걸이자 비열한 자기방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학교나 회사에서 이런 자들에게 부당하게 괴롭힘과 공격을 당하는 이들은 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하는가?
- 첫째, 공격을 결코 내면화하지 않는 인지적 분리다. 괴롭힘을 당할 때 많은 이들이 "내가 무언가 부족해서인가?", "내가 만만해 보였나?"라며 화살을 자신에게 돌린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그들의 악의는 내 결점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에 쌓인 만성적인 결핍과 열등감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악취일 뿐이다. 상대를 강자로 보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저 사람은 지금 영혼의 기근에 시달려 남의 자존감을 훔쳐 먹으려는 가련하고 추악한 걸인에 불과하다"고 규정하고, 그들의 폭언과 행동을 단지 ‘그들의 질병 증상’으로 제3자처럼 분리해 바라보아야 한다.
- 둘째, 도덕적 설득을 포기하고 냉정한 경계선을 긋는 실천이다. 마음이 파산한 이들에게 양심을 호소하거나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원하는 먹이를 던져주는 꼴이다. 감정의 동요를 일절 보여주지 않는 무반응의 태도(Gray Rock)를 취하되, 선을 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실 관계와 증거를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이들은 오직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길 때’에만 멈추는 비겁한 본능을 가졌으므로, 감정 싸움 대신 사규, 법률, 객관적 절차라는 차가운 시스템의 벽으로 그들을 가로막고 내 일상의 평온을 지켜내야 한다. 그들의 천박함에 내 행복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온전한 승리다.
우리가 이렇게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간의 비틀린 성격은 사춘기를 지나며 사실상 영구적으로 굳어져, 성인이 된 이후에는 거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철들면 나아지겠지", "나이 먹으면 변하겠지"라는 믿음은 뇌과학과 발달심리학 앞에서 철저한 환상이다. 인간의 뇌는 청소년기를 거치며 자주 쓰지 않는 신경망을 대거 잘라내는 ‘시냅스 가지치기(Synaptic Pruning)’와 회로를 단단히 굳히는 ‘수초화(Myelination)’를 거친다[3]. 뇌의 유연성이 급격히 닫히는 이 시기를 지나면 인지 모델과 대인관계 알고리즘은 화석처럼 굳어버린다. 성격심리학의 대규모 종단 연구들에 따르면, 개인의 성격 특성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순위 안정성(Rank-order stability)은 청소년기 후반(16~18세)에 이미 성인 수준에 도달한다[4]. 소아청소년기에 타인을 괴롭히던 ‘품행장애(Conduct Disorder)’가 사춘기 후반까지 교정되지 않으면, 만 18세 이후 성인기 ‘반사회성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영구 고착화된다는 것은 의학계의 정설이다[5].
이미 사춘기를 넘어 완성된 어른에게 도덕적 교화나 훈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회로 나온 성인들의 갈등은 결국 끝없는 탐욕과 ‘돈’, 밥그릇 싸움으로 귀결되며, 이들이 뿜어내는 악의는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집단적으로 파괴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불행의 굴레를 영원히 짊어져야만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이미 자라버린 어른을 바꿀 수 없다면, 인간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모든 철학적·사회적 해법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 사춘기를 마칠 때까지(0~18세) 겪는 결핍을 차단하는 데 집중되어야 한다.
한 인간이 성인으로 온전히 자라나는 데는 단순히 지갑에서 나가는 돈뿐만 아니라 부모의 뇌와 영혼이 매일 소모되는 고강도의 정신적 자원이 동시에 요구된다. 이 성장기 결핍의 구조는 ‘물질적·물리적 필수 생존 및 성장 고정비’와 ‘비물질적·신경학적 인지 및 정서 고정비’라는 두 가지 축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1. 물질적·물리적 필수 생존 및 성장 고정비 (0~18세)
사교육비나 고급 교구를 일절 배제하고, 오직 인간다운 신체 발달과 인격의 최소한을 유지하는 데 드는 주요 3개국(한국, 일본, 미국)의 순수 물리적 고정비 평균 데이터다[6][7][8].
- 대한민국 (한국)
- 초기 영유아기(0~3세, 36개월): 기저귀 월 8.5만 원, 분유 및 이유식 월 20만 원, 필수 보건·의료 월 17.5만 원. 영유아기 평균 월 46만 원 (3년간 누적 1,656만 원).
- 학령기 및 청소년기(4~18세, 180개월): 필수 단백질·과일을 포함한 가정 식비 월 40만 원, 급성장기 의류·신발 교체 월 11.5만 원, 필수 위생·보건(생리용품, 치과, 안경 등) 월 9.5만 원, 기본 학습·활동비 월 7.5만 원. 성장기 평균 월 68.5만 원 (15년간 누적 1억 2,330만 원).
- 18년 누적 순수 고정비: 1억 3,986만 원 (18년간 전체 월평균 64.7만 원).
- 일본 (Japan)
- 초기 영유아기(0~3세, 36개월): 기저귀 및 위생용품 월 10,000엔, 분유 및 베이비푸드 월 20,000엔, 기초 비급여 의료 월 12,500엔. 영유아기 평균 월 42,500엔 (3년간 누적 153만 엔 / 약 1,380만 원).
- 학령기 및 청소년기(4~18세, 180개월): 식비 월 40,000엔, 의류·신발 월 11,500엔, 위생·보건 월 9,500엔, 기본 활동비 월 7,500엔. 성장기 평균 월 68,500엔 (15년간 누적 1,233만 엔 / 약 1억 1,100만 원).
- 18년 누적 순수 고정비: 1,386만 엔 (약 1억 2,480만 원 / 18년간 전체 월평균 64,167엔).
- 미국 (USA)
- 초기 영유아기(0~3세, 36개월): 기저귀 월 $90, 조제분유 월 $200, 필수 보건 및 코페이 월 $150. 영유아기 평균 월 $440 (3년간 누적 $15,840 / 약 2,140만 원).
- 학령기 및 청소년기(4~18세, 180개월): 식비 월 $425, 의류·신발 월 $115, 청소년 보건·위생 월 $115, 기본 활동비 월 $75. 성장기 평균 월 $730 (15년간 누적 $131,400 / 약 1억 7,740만 원).
- 18년 누적 순수 고정비: $147,240 (약 1억 9,880만 원 / 18년간 전체 월평균 $681.7).
2. 비물질적·신경학적 인지 및 정서 고정비 (부모의 에너지 소진과 정서 노동)
화폐로 쉽게 환산되지 않지만, 아이의 뇌를 온전히 빚어내기 위해 부모가 매일 치러야 하는 신경생물학적 자원의 고정 소진이다.
- 영유아기 24시간 초각성 상태와 수면 박탈: 갓난아이는 2~3시간마다 수유와 기저귀 교체를 요구한다. 부모는 만성적인 수면 조각화에 시달리며 아이의 안전을 위해 24시간 내내 뇌의 편도체가 경보를 울리는 초각성(Hyperarousal) 상태에 놓인다. 이는 전두엽의 자기 통제 기능을 구조적으로 마비시키는 극심한 인지 피로를 낳는다[9].
- 성장기 내내 요구되는 ‘정서적 방파제’ 역할: 아이가 자라며 겪는 사회적 불안, 떼쓰기, 그리고 사춘기의 폭발적인 반항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정서적으로 조율해 주는 작업은 엄청난 자기 통제력을 요구한다. 내 감정을 억누르고 아이의 분노를 수용해 주는 이 정서 노동은 매일 에너지를 바닥내는 고강도 과업이다.
- 일상 관리의 인지적 과부하(Mental Load): 영양 관리, 질환 및 병원 케어, 일정 조율 등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려야 하는 판단은 부모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을 남김없이 소진시킨다.
이 두 축이 물질적 가난과 맞물릴 때 비극은 극대화된다. 여유 있는 환경에서는 물질적 자원을 통해 정서적 과부하를 분산시키지만, 생계가 위태로운 부모는 하루 열두 시간 노동에 방전된 뇌로 이 엄청난 정신적 요구를 홀로 감당해야 한다. 부모의 정신적 배터리가 0%인 상태에서 아이의 울음과 반항은 '내 숨통을 조이는 공격'으로 느껴지며, 여기서 폭언, 방임, 정서적 셧다운이 발생해 아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결핍을 남긴다.
현행 국가 지원 제도의 현실과 사각지대: 3개국 비교
일각에서는 “지금도 국가가 복지 제도로 다 지원해주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한국, 일본, 미국 3개국 모두 복지 정책을 가동하고 있으나, 현장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물질적 생존선과 정서적 안전망 모두에서 치명적인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
1. 대한민국 (Korea)
- 물질적 지원과 사각지대: 부모급여(0세 월 100만 원, 1세 월 50만 원), 아동수당(만 8세 미만 월 10만 원), 기저귀·분유 바우처, 결식아동 급식카드 등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맹점은 복지 당사자가 직접 찾아내 증빙해야 하는 ‘신청주의’다. 부모가 알코올 중독이나 극심한 방임 상태에 놓인 위기 가정일수록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아 정작 가장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구제받지 못한다[10]. 또한 아동수당은 만 8세에 끊겨 사춘기 성장기 지원이 전무하며, 결식아동 급식카드는 사용처의 한계와 사회적 낙인감 때문에 아이들을 편의점 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내몰아 만성적 영양 불균형을 방치한다.
- 비물질적·정서적 지원과 사각지대: 학교 내 ‘Wee클래스’와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드림스타트’ 사업이 있으나 전문 상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심층 치유가 아닌 형식적 1회성 면담에 그친다. 상담실 방문 자체가 또래 집단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는 구조 탓에 정작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이 문을 닫아건다. 가정폭력이나 방임이 발견되어도 임시 분리 시설과 전담 공무원의 강제력이 미약해 결국 학대의 온상으로 되돌려 보내지는 악순환이 빈번하다.
2. 일본 (Japan)
- 물질적 지원과 사각지대: 어린이 가정청(こども家庭庁) 출범 이후 아동수당을 고등학생(만 18세)까지 확대(월 1만~3만 엔)하고 지자체별 영유아 의료비를 무상화했으나, 엔저와 급격한 물가 상승으로 정액 수당의 실질 구매력이 바닥을 쳤다. 특히 한부모 가정 빈곤율이 44.5%에 달해[11] 방임 아동의 결식을 국가가 감당하지 못하고, 전국 9,000개소가 넘는 민간 자원봉사 ‘어린이 식당(子ども食堂)’에 아이들의 끼니를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 비물질적·정서적 지원과 사각지대: 각 학교에 ‘스쿨 카운슬러’를 배치하고 있으나 대부분 주 1~2회 출근하는 불안정 파트타임 계약직에 불과해 아이와의 지속적인 라포(신뢰) 형성이 불가능하다. 일본 사회 특유의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메이와쿠)’는 문화적 압박은 가정 내 학대와 방임을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숨겨버린다. 그 결과 정서적 고립을 겪는 청소년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등교 거부(후토코)와 방 안에 틀어박히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로 침잠하고 있다.
3. 미국 (USA)
- 물질적 지원과 사각지대: 저소득 임산부·영유아 영양 지원인 WIC와 저소득층 식비 지원 SNAP(푸드스탬프), 공적 의료보험 Medicaid를 운영한다. 그러나 관료주의적 맹점으로 인해 WIC와 SNAP 모두 ‘기저귀(Diapers)’ 구매를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기저귀를 필수 생존재가 아닌 공산품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저소득층 3가구 중 1가구가 기저귀 부족을 겪으며[12], 젖은 기저귀를 털어서 다시 채우는 참담한 현실이 발생해 민간 기저귀 은행에 의존한다. 복잡한 서류 갱신 절차(Red Tape)로 인해 수많은 아동이 의료 혜택에서 탈락하는 제도적 구멍도 심각하다.
- 비물질적·정서적 지원과 사각지대: 저소득 조기 발달 프로그램 ‘헤드스타트’와 공립학교 카운슬러 제도가 있으나, 거주 지역 재산세에 연동되는 교육 재정 구조 탓에 빈곤 학군일수록 카운슬러 1명이 학생 500~1,000명을 감당해야 한다. 미국에서 전문 심리 치료는 철저히 고가의 민간 시장에 맡겨져 있어, 시간당 수백 달러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결핍 가정의 아이들은 방치된 채 우울과 분노를 마약과 총기 폭력으로 분출하고 있다.
국가의 핀포인트 책무: 생존선 보장과 생활권 심리 구명정의 결합
그렇다면 국가는 이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국가가 한 가정의 모든 양육 과정을 대리하거나 모든 비용을 퍼주는 만능 해결사가 되는 것은 재정적으로도 불가능하며 온당하지도 않다. 입시를 위한 사교육비나 부모의 과도한 사적 욕망까지 세금으로 메워줄 수는 없다. 사교육은 철저히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국가의 개입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만능 국가"가 아니라, "인간의 뇌가 악성으로 망가지지 않도록 막는 가장 치명적인 결핍 지점에 정확히 꽂히는 핀포인트(Pinpoint) 전략"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핀포인트 전략은 빈곤층과 부유층이 겪는 결핍의 성격에 맞춰 정교하게 두 갈래로 작동해야 한다.
첫째, 빈곤 가정에 대한 핀포인트 전략은 '생존의 마지노선'을 무조건적으로 깔아주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가 고결한 인성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생존 위협의 제거는 인간의 뇌가 정상 발달하기 위한 절대적 필요조건이다. 부유층의 정서적 결핍이 부모 개인의 뒤틀린 인성이나 선택적 방임에서 비롯된 개별적 병리라면, 빈곤층의 결핍은 생존의 벼랑 끝이 강요한 필연적 참사다. 당장 내일 채워줄 기저귀값이 없고 분유값을 벌기 위해 하루 열두 시간 이상의 살인적 노동에 내몰리는 부모에게, 자신의 번아웃을 억누르고 아이와 다정하게 눈을 맞추며 배려를 가르칠 정서적 잉여 자원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국가가 기저귀와 식비, 의료 같은 필수 생존 비용을 책임지는 것은 단순한 시혜가 아니다. 부모에게서 원초적인 생계 공포를 걷어냄으로써 아이를 온전한 인격으로 마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신적 여유와 숨통을 국가가 사주는 일이다. 부모의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영아에게 기저귀와 분유가 집 앞까지 배송되고, 성장기 결식 없는 양질의 식사를 무상 지원하며, 필수 의료와 예방접종을 국가가 100% 떠안는 생존선의 확립이야말로 아이의 뇌가 '세상은 정글'이라는 원초적 공포에 빠지지 않게 막는 기초 공사다.
둘째, 부유층 가정을 포함해 부모가 정서적으로 파산한 모든 아이들을 위한 핀포인트 전략은 '학교를 넘어선 지역사회 생활권 기반의 공적 심리 구명정'을 구축하는 것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가난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폐쇄된 가정 내부에서 벌어지는 정서적 방임, 가혹한 통제, 조건부 인정이라는 정신적 폭력에서 비롯된다. 국가는 부유층 부모에게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라"고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은폐된 정서적 결핍을 어디서 건져 올려야 하는가? 특히 성장기 청소년 중에는 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교 밖에서 각자의 길을 찾는 이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비물질적 핀포인트 인프라는 닫힌 학교 울타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아이들이 실제로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역사회 생활권 전반'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학교에 머무는 아이들에게는 낙인 없는 전문 심리상담과 돌봄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하고, 학교 밖 청소년이나 방황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동네마다 학생증 검사 없이 누구나 찾아와 따뜻한 식사를 하고 머물 수 있는 ‘문턱 없는 개방형 청소년 센터(열린 거점)’가 촘촘히 마련되어야 한다. 거리와 골목을 전전하는 위기 청소년을 직접 찾아가는 아웃리치 상담망 또한 상시 가동되어야 한다.
아이가 비록 가정에서는 차가운 통제나 방임을 겪을지라도, 학교나 지역사회의 공적 울타리 안에서 "나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믿어주는 어른"을 단 한 명이라도 안정적으로 만날 수 있다면, 아이의 뇌는 타인을 물어뜯는 괴물로 퇴행하지 않는다[13]. 부유층의 정서적 학대든 빈곤층의 방치든, 가정이 제 기능을 잃었을 때 학교 안팎의 모든 아이들을 차별 없이 받아내는 최후의 방패는 결국 ‘낙인 없는 공적 심리 케어와 지역사회 밀착형 돌봄망’이라는 국가 인프라뿐이다.
진정한 사회적 행복은 서로를 착취하는 성인 괴물들을 뒤늦게 교도소에 가두거나, 일터에서 그들의 폭력에 끝없이 상처받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당장 일상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도발에 휘둘리지 않고 단호한 경계선으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는, 다음 세대가 자라나는 18년의 성장기 전체를 돌봄의 빈곤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
국가가 물질의 밑바닥에서는 핀포인트로 생존의 공포를 걷어내고, 정서의 영역에서는 학교와 지역사회를 통해 차별 없는 심리적 구명정을 띄울 때, 비로소 사회는 '마음의 부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내면이 넉넉하고 결핍 없는 성인들이 서로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세상,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미래는 어른들의 탐욕을 채우는 시장이 아니라, 한 아이의 영혼이 굶주리지 않도록 받쳐주는 요람과 성장기의 든든한 품에서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참고문헌 및 각주]
- Vernon, P. A., Villani, V. C., Vickers, L. C., & Harris, J. A. (2008). "A behavioral genetic investigation of the Dark Triad and the Big 5."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4(2), 445-452.
- Caspi, A., McClay, J., Moffitt, T. E., Mill, J., Martin, J., Craig, I. W., Taylor, A., & Poulton, R. (2002). "Role of genotype in the cycle of violence in maltreated children." Science, 297(5582), 851-854.
- Blakemore, S. J. (2012). "Development of the social brain in adolescence."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105(3), 111-116.
- Roberts, B. W., & DelVecchio, W. F. (2000). "The rank-order consistency of personality traits from childhood to old age: a quantitative review of longitudinal studies." Psychological Bulletin, 126(1),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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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tional Diaper Bank Network (NDBN, 2023). Diaper Check: Diaper Need in America.
- Werner, E. E. (1993). "Risk, resilience, and recovery: Perspectives from the Kauai Longitudinal Study." Development and Psychopathology, 5(4), 50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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