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집이 일터였던 시대 — 가사노동 천시의 200년
도망갔다고 말하지 마세요. 준비 중입니다.
1. 방 안의 사람
한국에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청년이 최대 54만 명이 있다. 2023년 보건복지부 추정치다. 일본은 이보다 훨씬 앞섰다. 내각부가 2022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5세에서 64세 사이 히키코모리가 146만 명에 달한다. 인구의 2퍼센트다. 중국에서는 최근 '전직 자녀(全职儿女)'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름과 숫자는 다르지만 동아시아의 세 나라가 지금 같은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많다.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social withdrawal, 사회 철회자. 단어는 다르지만 세 언어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것은 하나다. '사회에서 물러난 사람'. 이 이름 안에는 이미 판단이 들어 있다. 물러났다는 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떠났다는 뜻이고, 있어야 할 자리에서 떠났다는 것은 돌려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30년간 일본의 정책, 한국의 뒤늦은 대응, 중국의 사회적 담론이 모두 이 판단 위에 서 있었다. 물러난 자를 다시 끌어오는 방식. 상담, 집단 프로그램, 직업 훈련, 재진입 지원. 30년이 지났고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오히려 청년층에서 중장년층으로 확산되어 '8050 문제'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구조다. 방법이 맞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방법이 틀렸다는 뜻이다.
방법이 틀린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도망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준비하고 있다. 다음 단계의 삶을 준비하고 있고, 그 준비가 외부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회복이 일어나고 있고, 생각이 정리되고 있고, 다음을 위한 체력이 축적되고 있다. 겉에서 보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준비를 '도피'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필자도 안다. 몇 달 동안 취업이 안 되어 방에 틀어박힌 적이 있었다. 그 시기는 필자가 겪은 것 중 상당히 큰 고통이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가족의 발소리, 지나가는 시간을 가리키는 해의 각도, 이력서를 보내도 답장조차 없는 메일함. 그 방에 머물러 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일이 있다. 그것은 도피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피할 수 있다면 그 방에 있지 않는다. 도피할 힘조차 없을 때 사람은 방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할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집에 있는 것이 언제부터 이렇게 문제가 되었는가.
2. 집에 있는 젊은이는 언제부터 비정상이 되었나
지금 우리는 집에 있는 젊은이를 보면 반사적으로 판단한다. '저 사람은 일을 안 하고 있다.' 이 판단은 우리 머릿속에서 매우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너무 자동적이어서 이것이 판단이라는 사실조차 잊는다.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사실로 느껴진다. 부모가 성인 자녀에게 "언제 나갈래"라고 묻는 것이 당연하게 들리고, 이력서에 공백 기간이 있으면 설명을 요구받는 것이 당연하게 들리고, 30대가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하면 "독립 못 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당연하게 들린다.
그런데 이 당연함 자체가 이상하다.
인류는 수천 년간 집에 있었다. 집에 있는 젊은이가 비정상으로 간주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조선시대의 청년은 집에서 살았다. 결혼한 뒤에도 대가족 안에 남아 있었다. 부모 곁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불효로 여겨졌다. 유럽의 중세 농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녀가 스무 살이 넘어서도 부모의 집과 농장에 머물며 일하는 것이 일반적 형태였다. 중국의 고대부터 근세까지도 3대가 한 집에 사는 것이 표준이었고,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는 가업을 물려받는 청년이 집에 남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지금 우리가 "집에 있는 젊은이 = 비정상"이라고 읽는 시선은, 역사 속 수많은 문명의 수많은 세대가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시선이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집을 떠난 젊은이 = 비정상"이 더 자연스러운 판단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나서 군역에 끌려갔거나, 빚 때문에 집을 나갔거나, 가족과의 큰 문제가 있어서 떠난 경우에만 젊은이가 집 밖으로 나갔다. 스스로의 의지로 집을 떠나 다른 도시의 낯선 건물에 출근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감각은, 인류 역사의 대부분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감각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언제부터 집은 일터가 아니게 되었고, 언제부터 집에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되었고, 언제부터 가사노동은 노동이 아니게 되었는가.
3. 집이 일터였던 시대
산업혁명 이전 수천 년 동안, 인류에게 집은 잠을 자는 곳이 아니었다. 집은 일하는 곳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가는 모든 일'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이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학계에서는 오래된 상식이다. 영국의 역사인구학자 피터 라슬렛(Peter Laslett)은 1965년의 저서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The World We Have Lost)』에서 전근대 유럽 가정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전근대의 가족은 단순한 거주 단위가 아니라 '생산 단위'였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제적 활동에 참여했고, 집은 그 모든 활동이 수렴하는 중심이었다.
한국의 전통 농가를 떠올려 보자. 마당이 있고, 논이 있고, 밭이 있다. 부엌이 있고 아궁이가 있고 장독대가 있다. 외양간에는 가축이 있고, 우물에서는 물을 긷고, 베틀에서는 옷감을 짠다. 이 모든 공간이 집이었고, 이 모든 공간에서 노동이 이루어졌다. 남성은 주로 논과 밭에서 일했고 여성은 주로 부엌과 길쌈에서 일했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집에서' 일했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는 집에 있으면 자동으로 노동의 체계 안에 있었다. 아버지의 농사를 돕거나 어머니의 가사를 돕거나 가축을 돌보거나 심부름을 다니거나, 그 무엇이든 그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유럽도 다르지 않았다. 14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의 농가 경제는 가족 단위로 구성되었고, 남성과 여성이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전문 노동을 수행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앨리스 클라크(Alice Clark)는 1919년의 저서 『17세기 영국에서 여성의 노동 생활(Working Life of Women in the Seventeenth Century)』에서 이 시대의 가정을 "가족 경제(family economy)"라고 불렀다. 아내는 남편의 동반자였고, 두 사람은 같은 가내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여성이 맥주를 양조하고 빵을 굽고 옷감을 짜고 우유를 짜는 것은 가정의 부수적 활동이 아니라 가정 수입의 중심 축이었다.
이 시기의 '일'과 '집'은 개념적으로 구분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일터가 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일하러 간다"는 표현 자체가 낯설었을 것이다. 일은 어디를 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체계가 무너졌다.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매우 철저하게.
4. 가사노동 천시의 200년
무너뜨린 힘의 이름은 산업혁명이다. 1760년경부터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과 북미로 확산된 이 변화는 인류의 노동 구조를 200년 만에 완전히 재편했다. 그리고 이 재편 과정에서 한 가지가 결정적으로 격하되었다. 집에서 수행되는 노동, 곧 가사노동이다.
공간의 분리
먼저 일어난 것은 공간의 분리였다. 수공업 단계에서는 장인의 집이 곧 공방이었고 농부의 집이 곧 농장이었다. 그러나 공장이 등장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기계는 집 안에 둘 수 없었다. 거대한 방적기와 방직기, 증기기관, 그리고 이들을 운영하는 공장은 집과 분리된 거대한 건물에 설치되었고, 노동자는 그 건물로 '출근'해야 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출근'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일하러 가기 위해 집을 떠난다는 기묘한 행위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 분리는 단순한 공간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두 개의 영역으로 쪼갰다. 집 밖의 영역과 집 안의 영역.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임금을 주고받는 영역과 임금이 없는 영역. 그리고 이 쪼개짐과 함께 영역 간의 위계가 발생했다.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
학계는 이 위계를 '영역 분리(separate spheres)'라고 부른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를 거치며 서구 사회는 "남성은 공적 영역, 여성은 사적 영역"이라는 이분법을 제도화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84년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이 변화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집은 더 이상 생산 수단을 통제하지 못했고, 그 결과 집은 '사적이고 분리된 영역'으로 격하되었으며, 집에서 수행되는 노동 또한 사회적 평가절하의 대상이 되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가사노동의 '양'이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요리는 여전히 필요했고 청소도 여전히 필요했고 아이 돌봄도 여전히 필요했다. 줄어든 것은 가사노동의 '지위'였다. 임금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측정 가능한 경제 지표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노동은 '진짜 일'의 범주에서 밀려났다. 공장에서 일해서 돈을 가져오는 남편은 '일하는 사람'이고, 집에서 똑같이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아내는 '일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이 기묘한 이분법은 지금도 우리 머릿속에 작동한다. 한 사람이 "나는 지금 일하지 않고 집에서 애를 키운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애를 키우는 것은 24시간짜리 강도 높은 노동인데도, 임금이 없다는 이유로 일의 범주에서 빠져 있다.
한국의 압축된 200년
서구가 약 200년에 걸쳐 겪은 이 변화를, 한국은 30년에서 40년에 걸쳐 압축적으로 겪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집은 여전히 농경 사회의 집이었다. 논이 있고 밭이 있고 가축이 있었다. 가족 단위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산업화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공장이 대도시에 집중되었고,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서울과 부산과 울산의 공장으로 출근했다. 서구가 두 세기 동안 서서히 겪은 분리가 한국에서는 한 세대 안에 완료되었다.
한국 도시의 아파트를 생각해 보자. 거기에는 논이 없다. 밭도 없다. 가축도 없다. 마당도 없다. 베틀도 없고 장독대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부엌과 세탁기와 청소기다. 그마저도 요즘은 외식과 배달과 청소 서비스로 외주화되는 추세다. 아파트는 인류 역사상 '생산 활동이 가장 적은 집'이다. 이런 공간에 성인 자녀가 장시간 머무는 것이 문제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할 일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려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히키코모리가 걸려 있다.
히키코모리의 200년짜리 뿌리
히키코모리가 1990년대에 처음 사회적 개념으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998년 일본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가 『사회적 히키코모리(社会的ひきこもり)』를 출간하며 이 개념이 세워졌을 때, 일본은 이미 전후 고도 성장기를 지나 거품 경제의 붕괴를 맞이한 후였다. 집이 일터였던 시대의 기억은 할아버지 세대까지만 남아 있었고, 새로운 세대에게 '일'은 곧 '집 밖의 회사'였다. 이 전제 위에서 집에 있는 청년은 자동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 담론이 본격화된 것은 더 최근이다. 2000년대 초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되었고, 2021년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2024년에 서울청년기지개센터가 개관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2023년 말에야 처음으로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이 발표되었다. 정책이 시작된 지 겨우 2년 남짓이다. 일본의 30년에 비하면 갓 시작된 셈이다.
이런 시차를 감안하면, 히키코모리는 1998년에 발견된 현상이 아니라 200년 전에 뿌려진 씨앗이 지금 나타난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집이 일터이기를 멈춘 바로 그 순간에 씨앗이 뿌려졌다. 집에 남은 노동이 '일'로 인정받기를 멈춘 바로 그 순간에 이 문제의 논리적 조건이 갖추어졌다. 그 뒤로 200년 동안, 집에 있는 젊은이는 점점 더 '비정상'으로 규정되어 갔다. 그리고 그 규정의 최종 형태가 히키코모리라는 이름으로 지금 우리 앞에 와 있다.
이중의 천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가사노동 천시에는 사실 두 층이 겹쳐 있다. 첫 번째 층은 '무임금'이라는 이유로 천시받는 층이다. 두 번째 층은 '주로 여성의 일'이라는 이유로 천시받는 층이다. 이 두 층이 겹쳐서 가사노동은 지난 200년간 이중으로 격하되어 왔다.
남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을 사회가 특별히 칭찬하거나 특별히 조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칭찬은 "남성이 여성의 일까지 한다"는 뜻이고 조롱은 "남성이 여성의 일이나 한다"는 뜻이다. 두 반응 모두 가사노동을 '여성의 일'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 전제가 깔려 있는 한, 히키코모리 남성이 집안일을 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을 한다'로 해석되지 않고 '여자들이나 하는 일을 한다'로 해석된다. 이것은 잘못된 전제다. 산업혁명 이전에도 남녀의 일은 나뉘어 있었지만, 나뉜 두 영역이 모두 '일'로 인정받았다. 여성이 집에서 맥주를 만들고 치즈를 만들고 옷감을 짜는 것은 가정 경제의 생산 활동이었고, 그 기여는 남성의 농사 노동과 다를 뿐 결코 낮게 평가되지 않았다. 가사노동이 '진짜 일이 아닌 것'으로 내려앉은 것은 산업혁명 이후다. 생산이 공장으로 옮겨가고, 임금을 받는 것만이 '일'로 정의되면서, 집에 남은 노동은 그 정의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노동을 주로 여성이 수행했기 때문에 두 층의 천시가 겹쳐 쌓였다. 지금 집안일을 '여자들의 일'이라고 낮추는 시선은 성별의 자연스러운 질서가 아니라, 200년짜리 경제 구조의 부산물이다.
5. 집안일에서부터, 작은 계단부터
그렇다면 무엇을 달리 볼 것인가. 방 안에 있는 한 사람, 그리고 그 한 사람의 가족과 주변이 지금 당장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집안일이다.
작은 성취의 원리
탈진한 사람에게 큰 것을 요구하면 다시 탈진한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오래전부터 확인된 원리다. 1970년대에 피터 르윈손(Peter Lewinsohn)이 제안한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 이론은 우울과 회피의 악순환을 작은 행동부터 끊는 방식을 제시했다. 활동이 줄면 보상이 줄고, 보상이 줄면 다시 활동이 줄어드는 고리가 우울을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이 고리를 끊는 방법은 큰 의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을 먼저 실행하는 것이다. 작은 행동 → 작은 보상 → 조금 늘어난 의욕 → 조금 더 큰 행동. 이렇게 계단식으로 올라간다.
이 원리는 히키코모리 개입에도 점점 적용되고 있다. 일본의 임상 연구자 구보(Kubo)와 동료들은 2023년 『일본심리학연구(Japanese Psychological Research)』에 발표한 무작위 대조 연구에서 '작은 단계 접근(small-step approach)'을 공식 프로그램 요소로 포함시켰다. 일본 정부의 히키코모리 지원 가이드라인도 네 단계 접근법을 권장한다. 가족 지원 → 개인 지원 → 중간 집단 훈련 → 사회 참여. 한꺼번에 사회로 보내지 않고 계단으로 나눈다.
이 계단의 가장 낮은 칸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현재의 임상 문헌은 대체로 "산책 나가기", "친구에게 연락하기", "상담 센터 방문하기" 같은 것을 첫 칸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방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에게 이것들은 여전히 너무 높은 칸이다. 더 낮은 첫 칸이 필요하다.
그 첫 칸은 집 안에 있어야 한다.
집안일이 첫 칸이다
집에 있는 사람이 집 안에서 가장 낮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집안일이다. 설거지 하나, 빨래 하나, 장보기 하나. 이런 것이 무엇이 그리 대단한 성취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방에서 며칠, 몇 주, 몇 달을 보낸 사람에게는 설거지 하나가 마라톤 완주에 비견되는 성취가 된다. 성취의 크기는 절대적이지 않다. 그 사람의 현재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방 안 침대에서 부엌 싱크대까지의 세 걸음이, 어떤 사람에게는 에베레스트 등반보다 무거울 수 있다.
그리고 이 첫 칸이 중요한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집안일은 결과가 즉시 눈에 보인다. 설거지를 하면 그릇이 깨끗해진다. 빨래를 돌리면 옷이 개져서 나온다. 방을 치우면 방이 치워진다. 이 가시성은 작은 성취를 '성취'로 확정시킨다. 추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다. 탈진 상태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에는 바로 이런 가시성이 필요하다.
집안일이 쌓이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생활 리듬이 돌아온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는 그 반복이, 흐트러진 신체 시계를 다시 맞춘다. 그리고 '내가 오늘 무언가를 해냈다'는 감각이 조금씩 쌓인다. 이 감각이 쌓이면 다음 칸이 가능해진다. 집 앞 편의점에 다녀오기. 산책 나가기. 친구에게 연락하기. 단기 아르바이트 알아보기. 그리고 결국 사회적 성취에 해당하는 일까지.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진짜 좋아하는 일을,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다. 집안일이 그 준비의 가장 낮은 출발점이다.
부모가 대가를 주는 장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것이 있다. 부모가 그 집안일에 대가를 주는 것이다. 집안일을 한 날에는 일정한 용돈을 지급하는 간단한 약속부터 시작할 수 있다. 금액이 크든 작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노동 → 대가'의 구조가 성립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왜 이것이 필요한가. 성취를 성취로 확정시키는 것이 결과의 가시성이라고 앞서 말했다. 그런데 그 가시성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결과물 자체의 가시성(깨끗해진 그릇, 개진 빨래)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인정의 가시성(돈, 고마움, 칭찬)이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을 때 성취 감각이 가장 강하게 성립한다. 집안일을 해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집안일을 했을 때 작은 금전적 인정이 따라오면, 그것은 '내가 해서 무언가를 얻은 일'이 된다.
이 장치가 단지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것은 저자가 앞서 짚은 200년간의 역사적 전도를 국소적으로나마 복원하는 행위다. 집안일이 '일'의 범주에서 밀려난 이유가 '임금이 없다'는 것이었다면, 임금을 붙이는 행위는 그 전도를 뒤집는 최소 단위의 제스처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오가는 용돈이 세계 경제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한 가정 안에서 가사노동이 다시 '일'로 재정의되는 순간을 만든다.
중국의 사례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중국에서는 2020년대 초반부터 '전직 자녀(全职儿女)'라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성인 자녀가 부모로부터 월급을 받고 집안일과 가족 돌봄을 전담하는 형태다. 월급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4천 위안에서 8천 위안, 즉 평균 노동자의 월급 수준이다. 구체적인 업무는 요리, 장보기, 부모 병원 동행, 주말 가족 여행 계획 같은 것들이다. 중국 SNS인 샤오훙수에는 '전직 자녀(#全职儿女)' 해시태그 아래 수십만 건의 게시물이 올라와 있다.
이 현상은 비판과 옹호 양쪽에서 주목받는다. 비판론자들은 이것이 2000년대에 유행했던 '켄라오(啃老, 부모 뜯어먹기)' 현상의 재포장이라고 본다. 옹호론자들은 이것이 노령화 사회에서 가족 돌봄의 새로운 형태라고 본다. 저자가 보기에 이 두 해석은 모두 부분적으로만 맞다. 전직 자녀 현상의 진짜 의미는, 집안일과 가족 돌봄이 '일'로 재인정되는 과정이 한 사회에서 실제로 가능하다는 실험 사례라는 점에 있다. 이 실험이 영구화되면 문제가 되지만, 한시적 준비 기간으로 기능하면 설계 가능한 사회적 장치가 된다.
산업화 시대의 조건
여기에 한 가지 단서가 필요하다. 이 모든 제안이 전제하는 조건은, 우리가 여전히 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에 논이 없다. 직물을 짜는 베틀도 없다. 가축을 기르는 외양간도 없다. 따라서 집안일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조선시대의 농가라면 집에서 평생 일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지금의 아파트는 그것을 허용하는 공간이 아니다. 집 안의 노동만으로는 의식주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경제 활동의 확장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집안일은 첫 칸이지 마지막 칸이 아니다. 이 점은 명확해야 한다. 히키코모리 청년을 집에 영구히 머물게 하자는 제안이 아니다. 집에서 시작해서 결국 집 밖으로 나가는 여정을 설계하자는 제안이다. 집안일은 그 여정의 출발선이다. 그 출발선에서 작은 성취가 쌓이면, 그 다음 칸은 저절로 보이기 시작한다. 집 앞 가게에 다녀오는 일, 누군가와 간단한 거래를 하는 일, 하루에 한 번 나갔다 오는 습관, 짧은 시간제 일, 지속적인 소득 활동. 이 계단을 밟아 올라가서, 결국 그 사람이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에 닿는 지점까지 가는 것이다. 그 지점이 어디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회사에 들어가고, 어떤 이는 자영업을 시작하고, 어떤 이는 창작을 하고, 어떤 이는 또 다른 길을 찾는다. 중요한 것은 그 길에 '가는 중'이라는 감각이다. 집안일은 그 '가는 중'의 첫 걸음을 밟게 하는 장치다.
부모의 지원이 없는 경우
이 제안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집안일을 통한 준비 과정은 부모나 가족이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실제로 히키코모리 상태 자체가 '누군가 돈을 대주고 있는' 상황에서만 성립한다. 부모가 지원할 수 없으면 청년은 어차피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경제적 필요가 그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 한계가 제안을 무력화시키지는 않는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한국의 54만 명 고립·은둔 청년 중 상당수가 실제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이 현실에 대응하는 제안으로서 이것은 유효하다. 둘째, 부모가 지원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나 지자체가 그 역할을 일부 담당할 수 있다.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기본소득 실험, 지자체 긴급 생계 지원이 이 방향의 초기 형태다. 유럽 일부 국가의 가족 돌봄 수당도 유사한 구조다. 가정 단위에서 성립된 원리를 사회 단위로 확장하는 길이 남아 있다. 셋째, 그리고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이 제안의 핵심은 '돈을 준다'가 아니라 '집안일을 일로 본다'에 있다. 돈은 그 인정의 한 형태일 뿐이다. 부모가 경제적 여유가 없더라도, "네가 오늘 집을 치워서 엄마가 편해졌다"는 말 한 마디가 성취 확정의 역할을 일부 대신할 수 있다. 언어가 돈을 대신할 수 있다.
6. 200년 후의 한 방에서
히키코모리는 1998년에 발견된 현상이 아니다. 200년 전에 뿌려진 씨앗이 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결과다. 집이 일터이기를 멈춘 바로 그 순간에, 집에 있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 재정의되기 시작했다. 그 재정의가 가사노동을 노동의 범주에서 몰아냈고, 그 몰아냄이 남성이 집에 있는 것을 특히 수치스럽게 만들었고, 그 수치가 지금 한 청년의 닫힌 방문 앞에 무겁게 쌓여 있다.
그들이 방에서 나오게 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그들이 방에서 하고 있는 일을 일로 보는 것이 시작이다. 설거지 하나도 노동이다. 빨래 하나도 노동이다. 인류는 수천 년간 그렇게 살아왔다. 지난 200년만이 예외였다. 우리가 이 예외를 역사의 정상처럼 취급하는 그 순간, 한 청년의 준비는 도피로 오해되고, 오해는 압박이 되고, 압박은 그를 더 깊은 방으로 밀어넣는다.
제안은 간단하다. 집안일을 '일'로 다시 보는 것, 집안일에 작은 대가를 붙이는 것, 그리고 그 작은 성취가 더 큰 성취로 이어질 계단을 함께 그려주는 것. 이 계단의 끝에는 그가 진짜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있다. 그 일까지 가는 동안, 집안일은 낙오의 증거가 아니라 준비의 증거다.
누군가 "언제 방에서 나올래"라고 묻는 대신, "오늘 무엇을 준비했니"라고 물을 수 있다면. 그 한 마디가 바뀌는 순간이, 200년 묵은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순간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보건복지부. (2023).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 청년정책조정위원회 발표자료.
서울특별시. (2024).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종합지원 계획」. 서울청년기지개센터 개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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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원 / Wonbrand / https://wonbran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