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하고 못 끊는 것도 유전일까?

GLP-1 수용체 작용제(위고비) 경험과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본 알코올 중독 및 절제의 본질

안승원 · Wonbrand · 2026년 8월 13일


퇴근길 펍의 문을 열며 느끼는 설렘, 혹은 스트레스가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절실해지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우리는 흔히 술을 좋아하고 끊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타고난 술꾼 체질인가”라며 씁쓸하게 웃곤 한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마음'과 '끊지 못하는 행동'은 과연 유전자라는 정해진 운명의 결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 하나의 '술꾼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 및 정신의학 분야의 연구들에 따르면, 인간의 음주 행동은 '타고난 뇌', '타고난 몸', 그리고 '배운 절제력'이라는 세 가지 축이 얽혀 만들어진 복합적인 생물학적 결과물이다[1].

1. 첫 번째 축: 쾌락을 추구하는 뇌 (유전율 ~50%)

우리 뇌 속 복좌핵(Nucleus Accumbens)과 복태개영역(VTA)을 잇는 보상 회로는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을 뿜어내며, 이 보상 회로의 민감도는 쌍둥이 연구 등을 통해 약 50%가 유전되는 것으로 밝혀졌다[2]. 본능적으로 자극과 쾌락을 좇는 성향 자체를 물려받는 셈이다.

“나는 단것이나 쇼핑, 도박 같은 다른 쾌락 자극에는 별 반응이 없는데, 왜 유독 술에만 강한 욕구를 느낄까?”

그 이유는 뇌의 보상 회로를 터뜨리는 '특이적 스위치'에 있다. 사람마다 뇌를 단번에 매료시키는 대상이 다른데, 유독 '알코올'이 들어왔을 때 보상 회로가 가장 강력하게 켜지도록 세팅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알코올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 수용체에 작용해 스트레스를 순식간에 누르고 뇌를 이완시키는 고유한 약리 효과를 가진다[3]. 뇌를 단숨에 쉬게 만드는 알코올 반응성을 유전적으로 민감하게 물려받은 것이다.

2. 두 번째 축: 술을 받아들이는 신체 체질 (유전율 ~100%)

술을 마셨을 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100%에 가까운 명확한 유전의 영역이다. 동아시아인 중 약 30~50%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독성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가 쌓여 얼굴이 붉어지고 속이 뒤집히는 ALDH2 효소 변이(ALDH2*2)라는 유전적 브레이크를 타고난다[4].

여기서 첫 번째 축과 두 번째 축의 강력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 1축과 2축의 결합 (폭발적 시너지): 뇌는 알코올에 미친 듯이 기뻐하는데(1축 강함), 몸마저 술을 잘 받아내고 독성 반응이 없다면(2축 브레이크 없음), 술에 대한 갈망은 제어하기 힘들 만큼 극대화된다.
  • 1축이 강하지만 2축에 걸리는 경우 (욕구의 꺾임): 아무리 뇌가 알코올의 쾌락을 간절히 원할지라도(1축 강함), 몸에 유전적 브레이크가 작동해 속이 뒤집히면(2축 브레이크 작동), 생물학적 한계 때문에 음주 행동 자체가 신체적으로 억제된다.

3. 세 번째 축: 행동의 절제력과 둔화 (유전율 ~0%)

그렇다면 1축(뇌의 민감도)과 2축(몸의 수용성)이 결합해 강력한 가속 페달이 밟힐 때,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절제력 부재'마저 유전의 탓일까?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Prefrontal Cortex)이라는 '브레이크'의 통제 능력과 습관은 유전적 요인보다 후천적인 학습, 성장 환경,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 습관에 크게 좌우된다. 그럼에도 절제가 힘든 첫 번째 이유는 1축과 2축이 만든 가속 페달이 너무 강해 이성적 브레이크가 밀리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알코올이 체내에 들어오는 순간 전두엽의 통제 기능 자체가 약리적으로 마비되어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이다[3].

💡 나의 개인적인 경험: 위고비를 맞고 끊었을 때 일어난 일

이 세 가지 축의 작동 원리를 나는 내 몸으로 직접 체험한 적이 있다.

"나는 얼마 전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를 맞았을 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 약을 투여받는 동안에는 술 욕구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술자리에서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자연스럽게 잔을 내려놓는 절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위고비를 끊자마자 거짓말처럼 예전으로 돌아갔다. 술 생각이 다시 강렬해졌고, 한 잔을 기울이는 순간 또다시 절제가 되지 않아 끝까지 마시게 되었다."

나의 이 경험은 최근 학계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GLP-1 수용체 작용제의 알코올 갈망 억제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5].

  • 위고비를 맞았을 때: GLP-1 수용체 작용제인 세마글루타이드는 뇌의 중격의지핵 및 VTA 영역에 작용하여 알코올이 유발하는 도파민 분출을 물리적으로 차단한다[5][6]. 약물이 타고난 가속 페달의 힘을 생물학적으로 누른 상태였기 때문에, 내 이성(전두엽 브레이크, 3축)이 손쉽게 통제권을 쥐고 절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위고비를 끊었을 때: 약물 차단막이 사라지자, 타고난 뇌의 보상 회로(1축)가 다시 알코올에 강력하게 반응하며 가속 페달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가속이 다시 강력해지고 술에 의해 전두엽 기능마저 둔화되니, 브레이크(3축)가 밀려나가며 다시 절제가 극도로 어려워진 것이다.

❓ 그렇다면, 위고비 없이는 영영 끊기 힘든 걸까?

약을 끊고 절제가 다시 무너지는 경험을 하다 보면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이제 평생 위고비 같은 약 없이는 술을 통제하는 게 불가능한 걸까?”

진짜 문제는 술을 마시기도 전부터 "술이 미친 듯이 떙긴다(갈망)"는 점이다. 위고비가 물리적으로 눌러주던 뇌의 갈망 스위치가 다시 켜진 것인데, 이 상태에서 "술을 참아라" 혹은 "술자리를 피하라"는 조언은 배고파 죽겠는데 눈앞의 밥상을 치우라는 말처럼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약이 없는 상태라고 해서 무력하게 포기할 필요는 없다. 물리적으로 욕구를 눌러주던 약물 대신 ‘떙기는 순간 뇌를 속이는 응급 전략’으로 가속 페달을 조율할 수 있다.

  1. 골든타임 길목 차단하기: 술은 하루 종일 똑같이 떙기지 않는다. 퇴근길, 혹은 하루가 끝나는 저녁 7~8시처럼 뇌가 "도파민을 달라"며 가속 페달을 밟는 특정 경로와 시간을 파악해 그 길목 자체를 우회하는 것이다.
  2. 갈망의 파도를 흘려보내는 '15분 지연 규칙': 신경과학적으로 미친 듯이 술이 떙기는 뇌의 갈망(Craving)은 일시적인 신경전달물질의 스파이크로, 약 15~20분 후에 정점을 찍고 가라앉는다[7].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 15분 타이머를 맞추고 걷거나 차가운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뇌의 갈망 파도가 지나가길 기다려보는 것이다.
  3. 대체 자극으로 뇌 응급처치하기: 0.0% 무알콜 맥주, 매운 음식, 찬물 세수처럼 신체에 강한 감각 자극을 주어 도파민 결핍에 빠진 뇌의 시선을 잠시 돌려놓는 방법이다.

위고비는 우리에게 "아, 내 뇌의 가속 페달만 조율되면 나도 얼마든지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라는 소중한 생물학적 성공 경험을 확인시켜 주었다. 약이 사라진 지금은 그 가속 페달을 주사 대신 습관과 응급 전략이라는 핸들로 조율해 나가는 훈련의 단계일 뿐이다.

"알코올에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뇌(1축)와 이를 버텨내는 몸(2축)이 만나면 강력한 음주 가속 페달(유전)이 만들어진다. 내가 위고비를 맞고 끊으며 느꼈던 것처럼, 절제의 핵심은 단순한 의지력 싸움이 아니라 이 가속과 브레이크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데 있다."

유전자가 당신에게 '알코올에 유독 민감한 뇌'와 '술을 잘 받아내는 몸'이라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주었을 수는 있다. 약물의 도움 없이 다시 운전대를 잡고 떙기는 욕구를 다스리는 것이 처음엔 버겁게 느껴지겠지만, 뇌가 반응하는 원리를 알고 취하기 전 가속을 완화할 환경을 스스로 설계해 나간다면 브레이크는 언제든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유전이 끝나는 지점과 후천적 노력이 시작되는 경계 사이,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순간 오늘 밤 당신이 선택할 술의 양도 달라질 수 있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Goldman, D., Oroszi, G., & Ducci, F. (2005). The genetics of addiction: uncovering the genes. Nature Reviews Genetics, 6(7), 521-532.
  2. Verhulst, B., Neale, M. C., & Kendler, K. S. (2015). The heritability of alcohol use disorders: a meta-analysis of twin and adoption studies. Psychological Medicine, 45(5), 1061-1072.
  3. Koob, G. F., & Volkow, N. D. (2016). Neurobiology of addiction: a neurocircuitry analysis. The Lancet Psychiatry, 3(8), 760-773.
  4. Wall, T. L., Luczak, S. E., & Hiller-Sturmhöfel, S. (2016). Biology, genetics, and environment: underlying factors in alcohol use disorder. Alcohol Research: Current Reviews, 38(1), 59-68.
  5. Jerlhag, E. (2023). GLP-1 receptor agonists for the treatment of alcohol use disorder: Preclinical and clinical evidence. Neuropharmacology, 223, 109322.
  6. Klausen, M. K., et al. (2022). The GLP-1 receptor agonist semaglutide reduces alcohol intake and operant responding for alcohol in rats. EBioMedicine, 76, 103830.
  7. Marlatt, G. A., & Donovan, D. M. (Eds.). (2005). Relapse prevention: Maintenance strategies in the treatment of addictive behaviors. Guilford Press. (Urge Surfing Mech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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