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P는 그냥 상냥한 사람이 아닐까?

일본은 섬세함을 진단으로 만들었고, 한국은 산만함을 진단으로 만들었다

안승원 · Wonbrand 대표 · 2026년 5월 1일


1. note.com에서 만난 단어

머리를 너무 많이 쓴 날에는 따뜻한 일상 얘기나 연애, 가족 얘기를 읽으면서 힘을 내곤 한다. note.com에는 그런 글이 많다. 회사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 아이가 한 말, 부모가 했던 사소한 행동 같은 것들이 글이 되어 올라온다.

그런 글을 읽다가 「HSP」라는 단어를 자주 만났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가 어떤 사회에서는 매일의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었다. 이 단어가 마치 "우울증"이나 "번아웃"처럼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의 자기소개에도, 회사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의 일기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사람의 회상록에도 같은 단어가 들어 있다.

조사해보니 HSP는 "Highly Sensitive Person"의 약자였다. 1996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일레인 아론(Elaine Aron)이 처음 제안한 개념이다. 인구의 15에서 20퍼센트가 이런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그녀가 정의한 HSP의 특징은 네 가지였다. 자극의 깊은 처리, 과한 자극에 쉽게 압도됨, 정서적 강도가 큼, 미세한 자극의 감지.

이 특징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진단명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인격을 묘사한 글 같다.

이거 그냥 상냥한 사람 아니야?


2. HSP는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이 네 가지를 한 명의 사람으로 그려보면 이렇다.

같은 자극이 들어와도 오래 곱씹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흘려 듣고 지나간 한 마디가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어제 본 영화의 한 장면, 지난주 회의에서 동료가 지은 표정, 몇 달 전 누군가가 한 말이 자꾸 다시 떠오른다. 첫 번째 특징, "깊은 처리"다.

큰 소리, 강한 빛, 사람이 많은 공간 같은 자극에 다른 사람보다 빨리 지친다. 같은 카페에 있어도 다른 사람은 두 시간을 머무는데, 이 사람은 30분이 지나면 머리가 무거워진다. 두 번째 특징, "과한 자극에 압도됨"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깊게 반응한다. 슬픈 영화에서 더 오래 울고, 친구의 표정이 어두우면 자기 기분도 함께 어두워진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자리에 있으면 자기가 비난받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진다. 세 번째 특징, "정서적 강도"다.

다른 사람이 알아채지 못한 표정의 작은 변화,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 옷의 작은 라벨, 공간의 작은 소음 같은 것을 더 또렷하게 느낀다. 네 번째 특징, "미세한 자극의 감지"다.

인구의 15에서 20퍼센트가 이런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의학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아니다. 자기 안에서 이런 결을 발견한 사람들이 자기를 HSP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3. 일본만 유독 이 단어를 받아들였다

2018년 일본의 정신과 사회복지사 武田友紀(타케다 유키)가 『「気がつきすぎて疲れる」が驚くほどなくなる「繊細さん」の本』을 출간했다. 한국어로 옮기면 『"자꾸 알아채서 지치는" 게 놀랍도록 사라지는 "섬세한 사람"의 책』 정도가 된다. 이 책이 일본에서만 60만 부가 넘게 팔렸다.

「繊細さん」이라는 표현이 그때부터 일본 사회의 일상어가 되었다. note.com, X(트위터), 라디오 프로그램, 잡지 특집. 어디든 이 단어가 등장했다. 자기소개에 "私は繊細さんです"라고 쓰는 사람이 늘어났다. 카페에서, 미용실에서, 서점에서, 한 번도 진단받은 적이 없는 사람도 자기를 「繊細さん」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이 현상이 일본 바깥에서는 이만큼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개념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책으로 나왔지만, 사회 현상의 수준에 도달한 것은 일본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에서도 HSP라는 표현이 일부 사용되지만, 일본만큼 넓게 쓰이지는 않는다.

왜 일본일까. 이 질문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4. 한국에는 다른 단어가 떠 있다

일본의 SNS에서 HSP가 떠 있는 그 시기, 한국의 인스타그램 릴스에는 다른 단어가 떠 있었다. ADHD다.

"나 ADHD야"라는 자기소개가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정체성 표현이 되었다. "ADHD인 사람의 하루", "ADHD 친구가 있다면 이런 행동", "ADHD인 척하는 사람과 진짜 ADHD" 같은 콘텐츠가 매일 새로 올라온다. 짧은 영상 안에서 청년들은 자기 자신을 "산만한 신경계", "충동적인 신경계", "현재만 보는 신경계"로 묘사한다.

ADHD와 HSP는 둘 다 상당 부분 유전되는 신경계의 형질이다. 그러나 신경계가 유전이라는 사실과, 그 신경계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게 되느냐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신경계가 어떤 사회에서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흐르고, 어떤 사회에서는 매일 일상과 부딪친다. 그 부딪침이 누적될 때, 사람은 자기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게 되느냐가 달라진다.

같은 시기, 같은 동아시아의 두 나라가 서로 다른 단어를 들고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 있다. 한쪽은 "섬세함"으로, 다른 쪽은 "산만함"으로.

이 차이가 그저 우연일 리 없다.


5. 왜 한국에는 ADHD, 일본에는 HSP가 떠 있는가

같은 동아시아의 두 나라가, 같은 시기에, 서로 다른 신경계의 이름을 자기에게 붙이고 있다. 한국은 ADHD, 일본은 HSP.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답은 두 사회가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에 있다. 한 사회의 신경계는 그 사회가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따라 어디에서 어긋남을 느끼는지가 결정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이 다르면, 그 요구에 어긋나는 신경계의 모양도 달라진다.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빠른 속도다. 즉각적 반응, 분명한 결과, 경쟁의 강도. 식당의 회전 속도부터 회사의 결정 속도, 메시지의 답장 속도까지, 한국의 일상은 빠르게 굴러간다. 이 사회 안에서 사람은 매일 자기 신경계를 그 속도에 맞춰 조정한다. 그 속도와 다른 리듬을 가진 신경계는 매일 과부하를 마주치고, 그 과부하의 이름이 한국 청년의 인스타그램에서 ADHD가 된다.

일본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다른 결이다. 모르는 사람의 기분을 읽는 일, 갈등을 부드럽게 피하는 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일. 식당의 직원, 지하철의 옆 사람, 회의의 동료. 일본 사회 안에서 사람은 매일 자기를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춰 미세하게 조정한다. 이 조정을 너무 잘하는 신경계가 자기 자원을 다 쓰고, 그 다 씀의 이름이 일본에서 HSP가 된다.

두 진단명이 두 사회의 거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신경계가 두 사회에 있어도 서로 다른 결의 어긋남이 부각되고, 서로 다른 단어가 그 어긋남에 떠오른다. 한국에서 자주 마주치는 어긋남이 ADHD라는 이름을 얻은 자리이고, 일본에서 자주 마주치는 피로가 HSP라는 이름을 얻은 자리다.


6. 優しい(yasashii)라는 미덕

일본 사회가 사람에게 그런 결을 요구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결은 일본 사회가 오래전부터 길러온 가장 핵심적인 미덕에서 온다. 그 미덕이 優しい(yasashii)라는 한 단어로 정리된다.

優しい(yasashii)는 한국어 "상냥하다"나 영어 "kind"와 정확히 같지 않다. 優しい(yasashii)에는 "부드럽다", "섬세하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다룬다"는 뜻이 함께 들어 있다. 한 사람이 優しい(yasashii)라고 묘사될 때, 그것은 단순히 친절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고 자기를 조정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미덕을 가리키는 일본어 표현이 매우 많다. 「気配り」(상대의 기분을 미리 읽고 배려하는 것), 「察し」(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는 것), 「気が利く」(눈치가 빠르다), 「思いやり」(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 이 표현들이 모두 긍정적 함의를 가지고, 일상에서 사람을 평가할 때 자주 쓰인다. 한 사회가 어떤 가치에 대해 얼마나 풍부한 어휘를 가지고 있느냐는 그 사회가 그 가치를 얼마나 깊게 키워왔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優しい(yasashii)가 일본 문화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한국어 "착하다"가 한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자리보다 훨씬 크다. 일본의 문학과 영화와 노래 가사에서 優しい(yasashii)는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형용사 중 하나다. 결혼 상대를 묘사할 때, 친구를 추천할 때, 돌아가신 분을 회상할 때. 한 사람의 인격에 대한 가장 높은 평가가 優しい(yasashii) 한 단어로 정리된다.

그런데 優しい(yasashii) 사람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가 보인다. 그들은 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조금씩 더 살핀다. 다른 사람이 불편할까봐 자기 자리를 줄인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끊지 않으려고 자기 말을 미룬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그늘이 생기지 않도록 자기 표정을 조정한다. 자극을 깊게 처리하고, 다른 사람의 정서에 강하게 반응하고,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7. HSP는 상냥함에 지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시각에서 보면 HSP는 한 사람의 신경계 결함이라기보다, 한 사회의 미덕이 일상 깊이 흐를 때 자연스럽게 함께 떠오르는 사회적 현상에 가깝다. 일본 사회가 상냥함을 미덕으로 깊이 길러왔고, 그 결에 매일 자기를 조정하며 살아가다 지친 사람들의 자리에 HSP라는 이름이 떠오른 것이다.

ADHD도 같은 결로 읽힌다.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와 즉각적 반응을 일상의 결로 길러왔다. 그 속도와 다른 리듬을 가진 사람이 그 일상에서 자기 자리를 잡기 어려운 순간을 자주 마주친다. 그 순간이 누적되면 자기를 "산만한 사람", "충동적인 사람"으로 정의하게 되고, 그 자리에 ADHD라는 영어 의학 어휘가 들어왔다. 한국 사회의 빠름이 일상에 흐르기 때문에 자주 떠오르는 한 가지 현상이다.

두 진단명이 가리키는 것은 결국 한 가지 자리에 닿는다. 사회적 환경이 사람의 정신에 꽤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같은 신경계가 어느 사회에 놓이느냐에 따라, 어느 미덕과 어느 속도를 매일 마주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자기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게 되느냐가 달라진다. 일본은 상냥함을 길러왔기 때문에 그 결에 지친 사람의 자리에 HSP가 떠올랐고, 한국은 빠름을 길러왔기 때문에 그 속도와 어긋난 사람의 자리에 ADHD가 떠올랐다.

이 시각은 ADHD에 관한 글에서, 우울증에 관한 글에서, 히키코모리에 관한 글에서 비슷한 자리에 닿았던 결론이다. 신경계의 형질은 사회와 분리되지 않는다. 한 사회의 미덕과 일상의 결이 그 사회 안 사람의 정신에 영향을 주고, 그 정신이 사회와 만나는 어긋남에 한 가지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8. 맺으며

note.com에서 한 일본인이 쓴 짧은 글이 있었다. 그는 회사 회의에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너무 깊게 읽어서 자기 의견을 끝까지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회의가 끝나면 며칠 동안 그 회의의 모든 표정과 말이 머릿속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繊細さん」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이 머물렀다. 이 사람은 「섬세」한 게 아니라, 일본 사회가 가장 귀하게 여겨온 미덕에 매일 충실한 사람에 가깝다. 그 충실함이 오래 누적되어 지친 자리에, 사회가 HSP라는 영어 약자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모르는 사람의 기분을 미세하게 살피는 결이 일상에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순간을 자주 만난다. 식당에서, 지하철에서, 길에서.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일본이 떠오른다. 일본이 더 좋은 사회라는 뜻은 아니다. 그곳 사람들이 그 결 때문에 지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닿는 상냥함 자체는 이 시대에 더 귀해 보인다.

HSP는 그냥 상냥한 사람이 아닐까. 이 한 줄이 그냥 가벼운 질문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단처럼 보이는 영어 약자의 안쪽에는 한 사회가 오래 길러온 미덕이 있고, 그 미덕에 매일 충실한 한 사람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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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원. (2026). ADHD는 복싱을 해야만 한다 — 막싸움꾼 이론. Wonbrand. https://wonbrand.co.kr

안승원. (2026). 우울증: 보이지 않는 상처 — 우울증 상처 이론. Wonbrand. https://wonbrand.co.kr

안승원. (2026). 히키코모리: 집이 일터였던 시대 — 가사노동 천시의 200년. Wonbrand. https://wonbran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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