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WWW 이론 (WWW Theory)

안승원 · Wonbrand 대표 · 2026년 4월 12일


먼저, 결론

오래 고민한 끝에 남은 답은 단순했다.

누구와 대화하게 될지 모르니 영어를 공부한다.
어떤 일이 주어질지 모르니 많은 경험을 쌓는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니 이동을 준비한다.

나는 이것을 WWW 이론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세 개의 W — Who(누구와), What(어떤 일을), Where(어디로). 세 개의 모름에 대응하는 세 개의 개방성. 미래를 맞추려는 전략이 아니라, 미래가 어떻게 오든 대응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맞추는 건 아무도 못 한다. 적어도 나는 믿을 만한 예측가를 본 적이 없다.

화려한 답은 아니다. 창의력을 키우라거나, AI와 협업하라거나, 인간만의 감성을 찾으라는 류의 답보다 훨씬 덜 멋있다. 다만 오래 들여다볼수록 화려한 답들이 흔들렸고, 이 답이 남았다.


왜 창의력은 답이 아니라고 느꼈나

AI 시대에 인간의 보루는 창의력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시간이 갈수록 공허하게 들렸다. 2022년 ChatGPT가 공개된 뒤 가장 먼저 흔들린 사람들은 일러스트레이터, 카피라이터, 번역가, 사진 편집자, 작곡가 같은 직군이었다. 전통적으로 창의적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무너졌다. 회계사나 변호사가 먼저 무너진 게 아니었다.

이유를 곱씹어 보면 짐작이 간다. 우리가 창의력이라 부르던 것의 많은 부분은 사실 기존 패턴의 재조합이었다. 재조합은 대규모 언어모델이 가장 잘하는 일에 가깝다. Microsoft의 2025년 말 분석은 화이트칼라 500만 개 일자리가 구조적 대체 위험에 놓였다고 추정했다. Salesforce는 고객 지원 인력 4천 명을 AI로 대체했다고 인정했고, Amazon은 한 달 사이 화이트칼라 1만 6천 명을 줄였다. 세계경제포럼의 Future of Jobs Report 2025는 2030년까지 9200만 개 일자리가 사라지고 1억 7천만 개가 새로 생긴다고 전망했지만, 나는 이 숫자의 낙관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사라지는 자리와 새로 생기는 자리는 같은 사람이 옮겨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러면 인간은 어디에 서야 하나

한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AI가 결국 인간이 남긴 데이터의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면, 인류가 아직 풀지 못한 난제들은 AI도 풀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 이 논리에 나는 수긍한다. 데이터가 없는 곳에서는 보간할 재료도 없다.

그래서 내가 가장 믿게 된 답은 이것이다. 세상에 아직 없는 것을 만드는 일. 현실에 부딪혀서 새로운 사실을 생성하는 행위. AI는 이미 쓰인 지도를 놀라울 만큼 잘 읽지만, 지도 바깥으로 한 발 나가는 건 몸을 가진 존재의 몫으로 남는다. 그 한 발이 다음 세대 AI의 학습 재료가 된다. 이게 영원한 구조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앞으로 십수 년의 시간표에서는 이 구분이 유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나는 이 길이 특별한 소수의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지도 바깥으로 발을 내딛는 건 거창한 재능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여러 현장에 실제로 부딪혀 보는 태도, 남들이 당연하게 넘기는 불편을 "왜 아직 이대로 두고 있지"라고 되묻는 태도, 그리고 그 되물음을 실제로 하루의 작업으로 옮기는 태도다. 이 태도는 학위나 자격증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매일 무엇을 하며 사는지로 정해진다.

그런데 이 태도만으로 이 시대를 통과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태도가 힘을 발휘하려면 그 태도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고, 조건은 대개 구조적으로 주어진다.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가, 어떤 제도가 등 뒤에 있는가, 언제 문이 열려 있는가.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이 변수들이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그래서 나는 태도와 별개로 한 가지 더 필요한 게 있다고 느꼈다. 태도가 막히지 않도록, 태도가 작동할 조건을 스스로 찾아다닐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인 WWW 이론이다.

역사가 평범한 인간에게 남긴 단서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같은 대전환기에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견뎠는가. 기록은 생각보다 덜 낭만적이었다.

많은 경우는 견디지 못했다. 산업혁명기 영국 수공업 장인 다수는 극복하지 않았다. 극복이라 부를 만한 일은 증손자 세대에 가서야 일어났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다른 세계에 태어난 사람들이 적응한 사례에 가까웠다.

극복한 사람들이 실제로 한 일은 이동이었다. 19세기 유럽 농민 약 5천만 명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아일랜드 감자 기근에서 살아남은 사람 다수는 아일랜드에서 견딘 게 아니라 배를 탔다. 한국의 1960~70년대 이촌향도도 같은 패턴이었다. 물리적으로 몸을 옮기는 일이 가장 보편적인 생존 수단이었다.

극복한 사람들은 대개 혼자가 아니었다. 길드, 교회, 우애조합, 이민자 네트워크, 노조 같은 집단에 속해 있었다. 혼자 서 있던 개인은 같은 충격에 훨씬 쉽게 무너졌다.

많은 사람은 재교육으로 살아나지 못했다. 50대 제철소 노동자에게 코딩을 배우라는 조언이 현실적이지 않았던 것처럼, 30년 쌓아온 직업적 정체성을 1~2년 교육으로 갈아끼우는 건 통계적으로 잘 성공하지 않았다.

이 패턴들을 겹쳐 보면 한 가지가 드러난다. 평범한 사람이 생애 안에 직접 선택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변수는 공간이었다.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이것이 내가 세 축 중에서 이동을 가장 결정적인 자리에 두는 이유다.

세 개의 축

WWW 이론은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축, 언어의 개방성. 영어는 단순한 언어 하나가 아니라고 느낀다. 영어가 되는 사람은 40~50개 나라를 선택지로 가질 수 있고, 안 되는 사람은 2~3개로 좁혀진다. AI 번역이 아무리 좋아져도 영어로 바로 사고하고 관계 맺는 사람과 번역기를 끼고 소통하는 사람 사이에는 건너기 어려운 차이가 남을 가능성이 있다.

둘째 축, 경험의 개방성. 경험은 특정 직업을 위한 준비라기보다, 어떤 일이 남든 붙을 수 있는 범용 적응력을 쌓는 연습에 가깝다. 이민 시장에서도, 새로운 산업에서도 받아주는 사람은 학위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뭔가를 해본 사람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지도 바깥으로 한 발 나가는 태도"도 결국 여러 현장에 부딪혀본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경험은 방어용이기도 하고 공격용이기도 한 축이다.

셋째 축, 장소의 개방성. 이동은 특정 나라로의 이민이 아니라, 언제든 옮길 수 있는 상태의 유지에 가깝다. 20세기 화교 네트워크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격변을 통과했다. 한 나라에 충성하지 않고 동남아 여러 나라에 느슨하게 퍼져서, 어느 한 곳의 정치가 흔들리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식이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도 구조적으로 닮은 데가 있다. 정착민이 아니라 이동민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 축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영어가 없으면 이동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좁아지고, 경험이 없으면 이동해도 받아주는 곳이 없고, 이동 준비가 없으면 영어와 경험이 있어도 발이 묶인다. 세 개가 함께 있을 때에만 작동한다.

이 전략의 큰 장점은 틀릴 수가 없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가 10년 뒤에 살기 좋을지, 어떤 직업이 남을지, 어느 기술이 중요해질지 나는 모른다. 이 모름 앞에서 특정 답에 베팅하는 건 위험해 보인다. 반대로 모름 자체를 전제로 두고 세 축을 동시에 쌓아두면 어느 쪽이 답이 되든 대응할 수 있다. 예측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에 거는 전략이다.

남는 어려움들

물론 이 전략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동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고, 가족이 있으면 더 복잡해진다. 새 나라에 도착하면 언어, 네트워크, 신용 기록, 문화 자본이 거의 0에서 시작된다.

이동의 문이 닫히는 속도도 걱정된다. 1920년대 미국은 유럽 이민자에게 개방적이었지만 1924년 이민법으로 문이 거의 닫혔다. AI 시대에 자국 일자리 불안이 커지면 주요 선진국들도 문을 좁힐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언젠가 이동할 수 있게 준비한다는 태도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고, 문이 닫히기 전에 실제 자격을 확보해 두는 작업이 별개로 필요할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상태를 평생 유지하는 건 심리적으로도 무겁다. 국가 대신 속할 수 있는 다른 단위가 필요한 것 같다. 가족, 같은 처지의 동료들, 느슨한 글로벌 커뮤니티. 혼자서 이 방식으로 살면 지친다.

그래서 내가 남기고 싶은 것

AI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나는 확신 있는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오래 생각한 끝에 가장 덜 틀릴 것 같은 답으로 남은 것이 WWW 이론이었다. 영어로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상태, 여러 경험으로 어떤 일에도 붙을 수 있는 상태, 언제든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유지하는 것.

이것은 미래를 맞히겠다는 답이 아니라, 어떤 미래가 오든 덜 부서지게 서 있으려는 시도에 가깝다. 역사가 증언하는 패턴을 보면, 평범한 사람이 대전환기를 통과한 방식은 대체로 이런 종류의 태도였다고 나는 이해한다. 똑똒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라 움직일 수 있어서 살아남은 경우들. 거창한 재능이 아니라 조용한 이동성.

세 개의 축은 따로 세우면 쓰러지고, 함께 세워야 선다. 영어와 경험과 이동 준비. 이 조합이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가장 덜 흔들리는 답이다. 10년 뒤에 나 스스로 이 글을 수정하고 싶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지금은 이것을 축으로 내 하루를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누구와 대화하게 될지 모르니 영어를 공부한다.
어떤 일이 주어질지 모르니 많은 경험을 쌓는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니 이동을 준비한다.

이 세 문장이 내가 이 시대에 대해 붙잡고 있는 전부다. 화려하지 않지만, 화려한 답보다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란다.


참고문헌

Microsoft 2025 AI Job Exposure Analysis.

World Economic Forum, Future of Jobs Report 2025.

Acemoglu, D. & Restrepo, P., Automation and New Tasks, 2019.

ILO, World Employment and Social Outlook 2025.

Yale Budget Lab, Evaluating the Impact of AI on the Labor Market,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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