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는 복싱을 해야만 한다

ADHD는 사실 고대의 막싸움꾼이었다


막싸움꾼 이론 (Brawler Theory)
ADHD는 결함도, 선물도, 단순한 트라우마의 결과도 아니다.
본래 작동하던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가 사라진 시대에 살게 된 오래된 신경계의 흔적이다.

안승원 · Wonbrand 대표 · 2026년 4월 13일


1. 들어가며

이 글은 ADHD를 가진 사람을 진단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진단서는 이미 충분히 많다. 이 글은 ADHD라는 신경계가 어디서 왔고, 무엇이 본래의 자리이며, 그 자리를 다시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한 가지 시각을 제안하는 글이다. 그리고 그 시각이 맞다면, ADHD를 가진 사람이 자기 본성과 화해하면서 동시에 현대 생활을 잘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구체적인 길을 함께 제시한다.

ADHD에 대한 설명은 보통 두 갈래로 갈린다. 한쪽은 ADHD를 결함으로 본다. 도파민 시스템의 약화, 전전두엽의 발달 지연, 자기조절 회로의 손상. 고쳐야 할 무엇. 다른 한쪽은 ADHD를 선물로 본다. 진화가 남긴 자산, 창의성과 위기 대응력의 원천, 신경 다양성의 한 형태. 자랑스러워해야 할 무엇.

두 설명 다 절반만 맞다. 그리고 두 설명 다 ADHD를 가진 사람이 매일 느끼는 그 어긋남—세상 어디에도 자기 자리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이 글에서 제안하는 그림은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다. ADHD는 결함도 선물도 아니다. 본래 작동하던 환경이 있었는데, 그 환경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에 살게 된 오래된 신경계의 흔적이다. 잃어버린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글의 핵심 주장은, 그 잃어버린 자리의 흔적을 현대 사회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의 가장 깨끗한 형태가 복싱이다.


2. 기존 가설들의 한계

ADHD의 진화적 기원에 대한 가설은 적어도 여섯 개가 있다. 각각이 ADHD의 일부를 설명하지만, 어느 하나도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2.1 Hunter-Farmer 가설 (Hartmann, 1993)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매력적인 가설이다. 인류는 99% 이상의 시간을 수렵채집으로 살아왔고, ADHD는 그 시대의 사냥꾼 형질이 농업 사회에 와서 부적응으로 보이는 것이라는 그림이다. 즉시 반응, 환경 스캔, 위험 감수, 새로움 추구—이게 다 사냥꾼한테 자산이었다는 주장.

그런데 이 가설에는 결정적인 구멍이 있다. 사냥꾼은 작업기억이 좋아야 한다. 추적해온 짐승의 이동 경로, 동료 사냥꾼의 위치, 바람의 방향, 부족으로 돌아가는 길—이걸 다 머리에 들고 있어야 한다. 시간 감각도 좋아야 한다. 해 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니까. 장기 계획도 필요하다. 그런데 ADHD는 이게 전부 약하다. Hunter 가설은 ADHD의 강점은 설명하지만 결손은 설명하지 못한다. 절반의 답이다.

2.2 Fighter 가설 (Shelley-Tremblay & Rosén, 1996)

ADHD가 부족 간 전쟁 환경에서 자연선택으로 보존됐다는 주장. 즉시 반응, 공격성, 위험 감수가 전사한테 자산이었다는 그림. 이 가설도 자유 전사 모델이라 ADHD의 결손 부분을 설명하지 못한다. 전사도 작업기억과 전술적 사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2020년 고대 유전체 분석(Esteller-Cucala et al.)에서 ADHD 관련 변이가 네안데르탈인 시기부터 존재했음이 밝혀져, fighter 가설이 가정한 시점과 안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2.3 균형 선택 가설 (Williams & Taylor, 2006)

ADHD가 5%로 유지되는 이유를 집단 다양성으로 설명한다. 환경이 변동하니까 신중한 형질과 충동적 형질이 둘 다 필요하다는 그림. 이 가설은 "왜 5%냐"는 양적 질문에는 답하지만, ADHD가 왜 그런 특정한 형태인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2.4 트라우마 가설 (Maté, 1999)

캐나다 의사 Gabor Maté가 그의 책 Scattered Minds에서 제안. ADHD는 어린 시절 정서적 박탈로 자기조절 회로가 발달하지 못한 결과라는 주장. 루마니아 고아원 입양아 연구(Kennedy et al., 2016)가 이 가설을 부분적으로 뒷받침한다.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의 ADHD 비율이 일반 인구의 4~5배 높았고, 좋은 가정에 입양된 후에도 그 흔적이 평생 남았다.

이 가설은 ADHD가 가진 어떤 깊은 결핍의 느낌을 설명한다.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 한계가 있다. ADHD는 약 80%가 유전이다. 트라우마 가설은 이 강한 유전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2.5 자기가축화 가설 (Benítez-Burraco, 2010년대)

스페인 진화언어학자 Antonio Benítez-Burraco가 발전시킨 가설. 인류가 지난 수만 년 동안 자기 자신을 길들이는 과정을 거쳐왔고, ADHD를 포함한 신경발달 특성은 이 과정의 변이 또는 부분적 야생화의 결과라는 주장. 강력한 큰 그림이지만, 너무 일반론에 머문다는 한계가 있다.

2.6 막싸움꾼 이론 (이 글의 제안)

위 다섯 가설의 빈틈을 모아보면 한 가지 패턴이 드러난다. 모든 가설이 ADHD의 강점과 결손 중 한쪽만 설명한다. 아무도 둘을 한 묶음으로 묶지 못한다. 그리고 모든 가설이 자연선택을 가정한다. 인공 선택의 가능성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 두 빈틈을 동시에 메꾸는 그림이 막싸움꾼 이론이다.


3. 막싸움꾼 이론

3.1 기본 그림

ADHD라는 신경계는 인류 사회의 한 오래된 환경에서 왔다. 분쟁과 내기와 구경거리를 위해 사람들이 사람들을 모아 싸우게 한 환경이다. 이건 한 시대 한 지역의 산물이 아니다. 수메르 왕궁의 씨름꾼, 에트루리아 장례 싸움, 게르만 부족의 결투, 메소아메리카의 공놀이 포로, 유목 사회의 칸이 소유한 씨름꾼—이게 다 같은 형태의 다른 이름이다. 인류 거의 모든 복잡 사회에 일관되게 존재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게 로마 검투사 같은 정교한 산업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로마 검투사는 이 긴 역사의 가장 정제된 마지막 단계일 뿐이고, 진짜 원형은 훨씬 거칠고 훨씬 오래됐다. 훈련 같은 건 없다. 학교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사람들이 모이고, 두 사람이 들어가서, 하나가 못 일어날 때까지 싸운다. 무기는 주워 든 돌, 몽둥이, 맨주먹. 발로 차고, 메치고, 닥치는 대로 한다. 옆 사람들은 구경하고 무언가를 건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어떤 신경계를 가졌을까. 그리고 그 신경계가 우리가 아는 ADHD와 어떻게 맞물릴까.

3.2 이 환경에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일곱 가지 형질

첫째, 가만히 있으면 답답해서 폭발하는 신경계. 지루함을 고통처럼 느끼는 신경계. 풀려나는 순간 그 답답함이 한꺼번에 폭발한다. 이게 ADHD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고, 막싸움 환경에서는 그 폭발이 정확히 작동한다.

둘째, 위험과 통증에 둔감한 신경계. 두려움이 적고 통증이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위험한 상황을 회피하기보다 정면으로 들어가는 본능. ADHD가 익스트림 스포츠나 위기 직업에 끌리는 것과 같은 뿌리다.

셋째, 즉시 반응하는 신경계.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신경계. 충동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사실은 0.1초 단위의 반응 속도다. 막싸움에서는 이 속도가 생사를 가른다.

넷째, 분노가 빠르게 폭발하는 신경계. 감정 강도가 큰 신경계. 분노 통제가 약한 게 아니라, 분노가 다른 사람보다 강하게 빨리 일어나는 것이다. 일상에서는 이게 손해지만, 막싸움에서는 분노가 그대로 무기가 된다.

다섯째, 현재에 사는 신경계. 미래를 무겁게 상상하지 못하고 "지금"만 또렷하게 느끼는 신경계. 시간 감각이 약하다고 진단되는 그것이 사실은 현재 집중력의 다른 얼굴이다. 막싸움꾼에게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게 자산이다.

여섯째, 위계와 정치 게임에서 거리가 먼 신경계. 거짓을 잘 못 꾸미고 사회적 미세 조정이 약한 신경계. 솔직함이 너무 많아서 손해를 보는 그 성향. 막싸움 환경은 정치가 필요 없는 곳이라서 이 솔직함이 부정되지 않는다.

일곱째, 회복탄력성이 강한 신경계. 어제 무너졌어도 오늘 다시 일어나는 신경계. 충격에 무너지지 않고 매번 새로 시작하는 그 능력. ADHD가 평생 잦은 실패를 견디면서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본래 형질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일곱 가지가 ADHD의 본질적 신경계 특징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이 일곱 가지는 막싸움 환경에서 손해가 아니라 자산이다.

3.3 결손이라고 불리는 것들의 다른 얼굴

여기가 막싸움꾼 이론의 가장 중요한 통찰이다. ADHD에서 "결손" 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사실 다른 환경에서는 자연스러운 형태였다.

작업기억이 약한 것, 시간 감각이 흐릿한 것, 장기 계획이 어려운 것, 위계를 잘 못 읽는 것, 자기 모니터링이 약한 것. 이게 다 현대 사무실 환경에서 평가될 때는 결손으로 보인다. 그런데 막싸움 환경에서 보면 다르다. 거기서는 이 형질들이 신경계를 본래 자리에 있게 해주는 조건이다.

작업기억이 너무 강하면 어제 누구한테 맞았는지를 무겁게 들고 다닌다. 시간 감각이 너무 또렷하면 자기 인생의 무게에 짓눌린다. 장기 계획에 너무 능숙하면 현재의 폭발을 살지 못한다. 위계를 너무 잘 읽으면 정치 게임에 빠져서 본래 자기 자리를 잃는다.

ADHD의 "결손" 은 사실 현재에 살게 해주고, 과거에 짓눌리지 않게 해주고, 정치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신경계의 다른 형태다. 다른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고, 다른 환경에서는 자산이고, 다른 환경에서는 자기 자리에 있게 해주는 것. 다만 그 다른 환경이 현대 사회에는 거의 사라졌을 뿐이다.

이게 ADHD가 야생 사냥꾼 모델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다. 야생 사냥꾼은 작업기억과 시간 감각과 장기 계획이 다 필요하다. ADHD 신경계는 사냥꾼이 아니라 현재에 사는 막싸움꾼 쪽이다.

3.4 어떻게 유전됐는가

ADHD가 80% 유전이라는 사실은 강력하다. 그런데 막싸움꾼 본인은 자손을 잘 못 남기는 경우가 많았을 텐데 어떻게 유전자가 보존됐을까.

답은 친족 선택인구의 양이다.

막싸움 환경에 직접 들어간 사람들의 형제·자매·사촌이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직접 막싸움꾼이 되지 않고 일반 인구로 살면서 자손을 남겼다. 약한 형태로 형질을 가진 그들의 후손이 또 가끔 강한 형태를 발현했다. 이게 수만 년 반복됐다.

그리고 이 환경이 한 시대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게 결정적이다. 수메르부터 아즈텍까지, 게르만부터 조선까지, 거의 모든 복잡 사회에 비슷한 형태가 있었다. 1만 년에 걸쳐 전 세계에서 이 형질이 가치를 가졌고 그래서 보존됐다. 5%가 살아남을 만큼의 양이 확보됐다.

이게 ADHD 유전자 분포의 일부 패턴과도 일치한다. DRD4-7R 같은 ADHD 관련 변이가 유목·이동 사회에서 보존되고 정착 농업 사회에서 줄어든 것은(Eisenberg et al., 2008), 이동·위험 환경에서 이 형질이 가치를 가졌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4. 다른 이론과 비교한 강점

막싸움꾼 이론의 강점은 기존 가설들이 따로 못 한 통합 설명을 한 모델 안에서 한다는 점이다.

항목HunterFighter균형선택트라우마자기가축화막싸움꾼
ADHD 강점 설명
ADHD 결손 설명
유전성 설명
5% 비율 설명
깊은 결핍의 느낌
인공 선택 메커니즘
화해의 방향 제시

핵심 기여를 정리하면:

1. 강점과 결손을 한 묶음으로: 강점(즉시 반응, 위기 대응, 신체 강함)과 결손(작업기억·시간감각·장기계획 약함)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신경계의 양면이다. 막싸움 환경에서는 둘 다 자연스러운 형태다.

2. 유전성을 환경 적응으로: 트라우마 가설이 설명 못 하는 80% 유전성을, 수만 년에 걸쳐 인구 단위에서 누적된 환경 적응으로 설명한다.

3. 깊은 어긋남의 느낌을 환경 부조화로: ADHD를 가진 사람이 평생 느끼는 어딘가 어긋난 느낌은 결함 때문이 아니라, 신경계가 본래 작동하던 환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4. 5% 비율을 양적으로: 1만 년에 걸쳐 전 세계 거의 모든 복잡 사회에서 이 형태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5%를 유지할 만큼의 선택압이 확보된다.

5. 화해의 방향 제시: 결함을 고치라는 것도 아니고, 본성을 자랑하라는 것도 아니다. 본래 작동하던 환경의 어떤 형태를 다시 자기 삶에 들이라는 구체적 답을 제시한다.

이 통합성이 막싸움꾼 이론의 기여다. 기존 가설들의 강점은 다 가져가면서 빈틈은 메꾼다.


5. 자리를 만나지 못한 신경계

현대 사회는 ADHD 신경계가 본래 작동하던 환경의 어느 쪽도 아니다. 사무실은 갇힌 것 같지만 진짜로 갇힌 건 아니다. 회의는 단조롭지만 폭발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메일은 끝없는 자극이지만 진짜 자극은 아니다. 학교는 9시간 앉혀놓지만 풀어주지 않는다.

ADHD 신경계가 이런 환경에 들어오면 본래 작동하던 폭발과 회복의 사이클을 만나지 못한다. 신경계가 "자, 이제 작동할 시간이야" 라고 말할 환경 자체가 없다. 그래서 어딘가 어긋난 느낌, 어딘가 답답한 느낌, 어딘가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일상이 된다.

이게 ADHD를 가진 사람이 평생 느끼는 그 감각의 정체일 수 있다.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의지가 약한 것도 아니다.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본래 작동하던 환경을 만나지 못해서 신경계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사무실의 ADHD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무실이라는 환경이 자기 신경계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진짜 위기, 진짜 마감, 진짜 폭발이 있는 환경에서는 같은 사람이 갑자기 또렷해진다. 응급실, 재난 현장, 창업 초기, 마감 직전—이런 곳에서 ADHD는 강점이 된다. 이게 우연이 아니다. 이 신경계는 본래 그런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환경이 부르면 신경계가 응답한다. 그 응답은 늘 거기 있었다. 다만 부르는 환경이 일상에 거의 없을 뿐이다.


6. 본성을 받아들인다는 것

여기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나온다. ADHD를 가진 사람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자기 신경계의 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게 무슨 뜻인가. 자랑스러워하라는 게 아니다. 결함으로 보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실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신경계는 오랜 시간 어떤 환경에서 작동하도록 만들어졌고, 그 환경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든다. 이건 본인 잘못이 아니고 본인 능력 부족도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게 첫 번째 화해다. 본인을 탓하지 않는 것. 게으르다고 자책하지 않는 것. 노력이 부족하다고 결론짓지 않는 것. 자기 신경계가 어디서 왔는지를 인정하고, 그 신경계와 싸우지 않는 것.

이 화해가 시작되면 그 다음 질문이 가능해진다. 이 신경계가 본래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환경의 어떤 조각을, 어떻게 내 일상에 다시 들일 수 있을까. 이게 막싸움꾼 이론이 결론으로 가져가는 실천적 질문이다. 결함을 고치는 게 아니라 환경의 한 조각을 정기적으로 만나주는 것. 그 조각이 있으면 신경계가 일주일 한 번이라도 본래 자리에 닿고, 그 닿음이 나머지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이게 본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의 실천적 의미다. 그리고 그 실천의 가장 깨끗한 형태가 복싱이다.


7. 운동이 아니라 싸움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건 운동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ADHD에 운동이 좋다는 건 누구나 안다. 도파민이 올라가고 신체 에너지가 해소된다. 그런데 그건 어떤 운동이든 마찬가지다. 달리기, 자전거, 수영, 헬스. 다 도움이 된다.

막싸움꾼 이론이 말하는 건 다르다. 싸움 그 자체가 목적인 종목을 하라는 것이다. 운동의 부수효과로 도파민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신경계가 본래 작동하던 환경 그 자체를 다시 만나는 것. 이건 운동과 차원이 다른 일이다.

태권도, 유도, 주짓수 같은 격투기는 사실 싸움이 아니다. 기술과 예의가 목적이다. 도장에서 절하고, 룰 안에서 점수 매기고, 위계 지키고, 사범한테 복종하고, 단조로운 품새 반복하고, 시간 맞춰 수련한다. 이 종목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ADHD 신경계가 본래 살던 환경과는 거리가 있다.

막싸움의 본질을 살린 격투 종목은 사실상 두 개뿐이다. 복싱과 종합격투기(MMA).


8. 복싱과 MMA: 막싸움의 두 후예

8.1 본질론으로는 MMA가 더 가깝다

정직하게 말하면, 막싸움꾼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현대 종목은 사실 복싱이 아니라 MMA다.

복싱은 룰이 많다. 주먹만, 허리 위만, 라운드로 끊고, 글러브 끼고, 클린치 떼고. 사실 복싱은 막싸움을 스포츠로 정제한 형태다. MMA는 룰이 적다. 반칙 몇 개 빼면 거의 다 된다. 막싸움 본질에 더 가깝다.

고대 막싸움꾼이 주먹만 썼을 리 없다. 발로 차고, 무릎 박고, 메치고, 깔고 누르고, 닥치는 대로 했다. 이게 MMA 그대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MMA는 글자 그대로 케이지(우리)에서 싸운다. 막싸움 환경의 형태론적 재현이 MMA의 케이지 구조에 가장 정확히 들어 있다.

이론 정합성으로만 따지면 답은 MMA다.

8.2 그런데 왜 복싱인가

복싱이 막싸움 본질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복싱은 막싸움꾼 이론의 결론으로 가는 데 결정적인 강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단순함. 복싱은 주먹, 회피, 폭발—이 세 가지가 전부다. 학습 곡선이 짧고 진입 장벽이 낮다. 복잡한 기술 체계를 외울 필요가 없다. 그냥 들어가서 폭발하면 된다. ADHD 신경계가 작업기억을 거의 안 써도 되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본래 자리와 정확히 맞는다.

둘째, 보편성과 접근성. 한국에서, 그리고 거의 모든 도시에서, 복싱장은 MMA 체육관보다 훨씬 흔하다. 진입 장벽도 낮다. 도구도 단순하다(글러브와 샌드백). ADHD 신경계를 가진 사람이 가장 빨리 가장 가깝게 본래 환경에 닿을 수 있는 길이 복싱이다. 이론적으로는 MMA가 더 정확하지만, 실천적으로 가장 빠르고 가장 깨끗한 답은 복싱이다.

이게 막싸움꾼 이론이 결론을 복싱으로 가져가는 이유다. MMA는 본질론의 정점이지만, 복싱은 그 본질이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입구다. 이론이 삶의 답이 되려면 본질만이 아니라 입구도 필요하다.

8.3 복싱이 신경계의 본래 자리를 어떻게 살리는가

복싱이 막싸움꾼 본질의 핵심을 어떻게 살리는지 정리하면 이렇다.

  • 폭발과 회복의 사이클: 라운드 구조가 정확히 이거다. 라운드 동안 폭발하고, 1분 쉬고, 다시 라운드. ADHD 신경계가 본래 살던 사이클 그대로다.
  • 즉시 반응: 0.1초 차이가 결과를 가른다.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ADHD의 즉각성이 자산이 된다.
  • 분노가 허용됨: 격투기 중에 분노를 그대로 무기로 쓸 수 있는 종목이다. 분노 통제가 약한 ADHD에게 일종의 해방이다.
  • 위계 없는 1대1: 사범도 없고 도장 위계도 없다. 링 안에는 둘만 있다. ADHD의 위계 거부 본능이 부정되지 않는다.
  • 회복탄력성이 자산: 어제 부서졌어도 오늘 또 들어가야 한다. ADHD의 회복탄력성이 정확히 작동한다.
  • 현재만 있음: 링 안에서는 미래가 사라진다. 다음 펀치만 있다. ADHD의 시간 감각 약함이 결함이 아니라 현재 집중력이 된다.

복싱은 ADHD 신경계의 본래 자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각들을 모두 살린다.

8.4 살아있는 사례: 벤 휘태커

이게 가설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살아있는 증언이 한 명 있다.

벤 휘태커(Ben Whittaker). 영국 라이트헤비급 프로 복서. 2020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별명은 "The Surgeon". 그리고 어릴 때부터 ADHD 진단을 받은 사람.

휘태커는 학교에서 가만히 못 있어서 결국 학교를 떠났다. 본인 표현으로 "방 안에서 튕겨다녔고 조용한 자리에서도 뭐든 말해야 했다. 항상 뭔가를 해야 했고 왜 그런지 몰랐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복싱장에 데려갔다. 첫 시합 후에 휘태커는 복싱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걸 알았다. 본인 표현으로 "복싱이 진부하게 들리지만, 거기서 진짜로 집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집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이 한 문장이 결정적이다. 막싸움꾼 신경계가 자기 본래 환경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인지를 본인이 정확히 짚었다. ADHD를 가진 사람이 평생 한 번도 못 느꼈을 수도 있는 그 감각—"여기가 내 자리다"—를 휘태커는 링에서 느낀다.

휘태커는 또 이렇게 말했다. "복싱이 나에게 규율을 줬고, 에너지를 풀 곳을 줬고, 그 이후로 나를 정말 바꿔놓고 진정시켰다." 그를 진정시킨 건 약이나 환경 조정이 아니라, 신경계가 본래 작동하던 환경을 다시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 이후 그는 복싱장 밖의 삶도 견딜 수 있게 됐다. 학교, 사회생활, 인터뷰, 미디어. 본래 어려웠던 일들이 더 견딜 만해졌다. 복싱이 그의 일상을 대체한 게 아니라, 복싱이 그의 일상을 가능하게 만든 닻이 됐다.

휘태커가 ADHD를 가진 모든 사람의 답이라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길이 다르다. 그러나 그는 신경계가 본래 자리를 만났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사례다. 본래 자리를 만난 신경계는 그 자리 밖의 삶도 더 잘 살아간다. 이게 막싸움꾼 이론이 약속하는 것이다.


9. 복싱은 답이 아니라 닻이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복싱이 ADHD를 "고치는" 게 아니다. 복싱이 모든 ADHD를 가진 사람의 답인 것도 아니다. 복싱이 약물 치료를 대체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단순한 처방이 아니다.

복싱은 이다.

ADHD 신경계는 일상의 사무실·회의·이메일·약속의 세계에서 어딘가 어긋나 있다. 그 어긋남은 평생 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신경계가 본래 작동하던 환경의 어떤 조각을 정기적으로 만나면, 신경계가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자기 자리에 닿는다. 그 닿음이 나머지 일상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 이게 닻의 의미다.

복싱장에 일주일에 세 번 가서 한 시간씩 폭발하고 돌아오면, 그 사람은 사무실에서 더 잘 견딘다. 회의에서 덜 폭발하고, 이메일을 더 잘 처리하고, 약속을 더 잘 지킨다. 복싱이 일상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복싱이 일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신경계가 본래 자리를 정기적으로 만나기 때문에, 본래 자리가 아닌 환경(현대 사회)도 견딜 수 있게 된다.

이게 본인이 가진 ADHD를 받아들이면서도 현대 사회를 잘 살아가는 길이다. 본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일상을 포기하지도 않는 길. 약을 먹는 것도 아니고, 사회를 떠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게을렀다고 자책하는 것도 아니다. 신경계의 본래 자리를 정기적으로 만나주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은 복싱이 아니어도 된다. 복싱은 가장 깨끗하고 가장 빠른 입구지만,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형태가 다를 수 있다. MMA여도 좋고, 응급 직군이어도 좋고, 위기 대응 일이어도 좋고, 자기 사이클로 일하는 자유직이어도 좋다. 본질은 본인 신경계가 본래 작동하던 환경의 핵심 조각—폭발과 회복의 사이클, 즉시 반응, 위계 없음, 현재 집중—을 자기 삶에 정기적으로 들이는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로 들어오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그 형태들 중에 가장 단순하고 가장 접근하기 쉽고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것이 복싱이라는 게 이 글의 결론이다. 그래서 시작점으로 복싱을 권한다. 시작해보고, 자기에게 맞는지 보고, 다른 형태로 옮겨가도 된다. 중요한 건 시작이다.


10. 마무리

ADHD는 결함이 아니다. 선물도 아니다. 트라우마의 단순한 결과도 아니다. ADHD는 본래 작동하던 환경이 있었는데 그 환경이 사라진 시대에 살게 된 오래된 신경계다. 잃어버린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첫 번째 화해다. 본인을 탓하지 않는 것. 본인이 게을렀거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결론짓지 않는 것. 그냥 신경계가 어디서 왔는지를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고 나면 그 다음 질문이 가능해진다. 본래 작동하던 환경의 어떤 조각을, 어떻게 내 일상에 다시 들일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깨끗한 답이 복싱이다. 매주 몇 번 복싱장에 가서 라운드를 뛰고 돌아오면, 신경계가 본래 자리를 정기적으로 만난다. 그 만남이 나머지 일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복싱은 ADHD를 고치는 약이 아니다. ADHD를 자랑하는 무대도 아니다. 복싱은 이다. 신경계가 일상의 어긋남 속에서도 정기적으로 본래 자리에 닿게 해주는 닻. 그 닻이 있으면 ADHD를 가진 사람도 사무실에서, 회의에서, 일상에서, 더 잘 살아갈 수 있다. 본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길.

벤 휘태커는 이걸 본인 입으로 말했다. "복싱장에서 집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리고 그 집에 정기적으로 다녀온 후로 그는 복싱장 밖의 삶도 더 잘 살게 됐다. 이게 막싸움꾼 이론이 약속하는 화해다. 결함을 고치는 게 아니라 본성과 화해하는 것. 자랑하는 게 아니라 자리를 만나는 것. 그리고 자리를 만난 후에는 자리 밖의 삶도 더 견딜 만해진다는 것.

ADHD를 가진 사람이 자기 본성을 받아들이고, 그 본성이 본래 작동하던 환경의 한 조각을 정기적으로 만나주면서, 동시에 현대 사회를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게 이 글의 진짜 바람이다.

ADHD는 본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복싱을 해야만 한다. 닻으로서.


정직한 단서

이 글에서 제시한 막싸움꾼 이론은 검증된 과학 가설이 아니라 개념 모델이다. ADHD 변이를 가진 인구가 역사적으로 막싸움꾼 형태의 환경 적응을 받았다는 직접적 유전체 증거는 아직 없다. 검증을 위해서는 (1) 막싸움 형태가 존재했던 인구 집단의 후손에서 ADHD 관련 변이 빈도가 더 높은지, (2) 고대 검투사·전사·위험 노동자 유골 DNA에서 ADHD 관련 변이가 더 흔하게 발견되는지, (3) 막싸움 전통이 강했던 사회와 약했던 사회의 ADHD 비율 차이가 있는지 등이 추가 연구되어야 한다.

벤 휘태커의 사례는 살아있는 증언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한 명의 사례가 이론을 통계적으로 입증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경계가 본래 환경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과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성적 증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글은 약물 치료를 부정하지 않는다. ADHD 약물(메틸페니데이트, 암페타민 계열, 비자극제 등)은 임상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치료법이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 막싸움꾼 이론이 제안하는 복싱은 약물의 대체가 아니라 보완이다. 약을 먹는 사람도 복싱을 닻으로 삼을 수 있고, 약을 안 먹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본인과 의료진의 판단이다. 이 글은 그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다.

이 글의 목적은 ADHD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는 것이지, 검증된 사실을 전달하거나 의학적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받아들이지 말고 하나의 시각으로, 그리고 본인 신경계와 화해하는 한 가지 길의 제안으로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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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및 미디어 자료

Ben Whittaker interview, Sky Sports Boxing (2023). "Ben Whittaker's plan to conquer Britain, then the world."

Ben Whittaker interview, ITV News Central (2023). "Showboating Ben Whittaker hits back at claims he makes a mockery of boxing."

Ben Whittaker interview, ITV News Central (2025). "Ben Whittaker: The showman on ADHD, discipline and life beyond boxing."


안승원 / Wonbrand / https://wonbrand.co.kr
작성일: 2026년 4월 13일